행사명 : | 토요명상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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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2013-09-28 |
장소 : | 목동 하타요가 |
한바다님이 말씀하셨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오늘은 먼저 질문을 해 보겠다.
엄청나게 덥다가 갑자기 시원해지니까 느낌이 어떤가?
- 좋습니다.
좋다는 느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두 가지이다.
(1) 하나는 원래부터 좋은 거다. 이건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절대적인 좋음)
(2) 또 하나는 안 좋은 것과 비교해서 좋은 것이다. 상대적인 좋음이다.
우리가 안 좋은 데 있다가 상황이 변할 때 좋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실제로 우리 내면에는 좋은 게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좋은 걸 모른다.
그러므로 이 상대적인 좋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순간에 비교를 통해 좋다는 마음이 살아나는 거다.
명상을 배운다는 것은…
명상을 왜 하는가? 목적이 뭔가?
-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 생각 너머에 세계가 있다고 하니까… 그걸 만나보려고 합니다.
생각의 세계를 the known, 생각너머의 세계를 the unknown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The unknown은 인식너머의 세계, 즉 너희는 모른다는 거다.
생각은 몇 개인가?
생각은 수 없이 많다. 이 생각을 없애려고들 하는데 사실 없앨 수가 없다.
하나를 없애면 하나가 또 생긴다. 수도 없이 많이 생긴다.
명상은 그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바로 여러분 자신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올라와도 쿤달리니를 겪고 있는 나 가 있는데 이 의문은 안 없어진다.
그게 마지막 쿤달리니인데,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 일어나는 단계이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unknown이다.
명상은, 깨달음은 일반적인 학문과 다르다.
일반적인 학문은 생각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은 unknown의 세계를 통해 완성된다.
서양에서도 이 unknown의 세계를 추구한 사람이 있었다.
추구하고 이야기하다가 죽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내가 볼 때 소크라테스는 완전히 깨달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깨달음에 근접했다.
그는 내면에 다이몬(Daimon)이 있었다.
이 다이몬이라는 것이 나중에 기독교에서는 데몬(Demon,악마)로 왜곡되었는데...
사실은 자기 내면에 있는 신성한 소리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내면에서 항상 신성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무언가를 하려면 '하지 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바로 다이몬의 소리 때문이다.
죽으려고 작정하고 떠들었다. 변론할 때.
내가 잘못했소 했으면 안 죽었을 거다.
왜냐하면 투표도 근소한 차이로 졌다.
1차 투표로 무죄냐 유죄냐를 가린 후
다시 2차 투표로 형량을 결정하는 건데
재판 내내 소크라테스는 마치 죽음을 원하는 사람처럼 대담하고 꼿꼿했다.
다이몬의 소리가 죽는 걸 마다하지 않았던 거다.
죽지마라 했으면 그렇게 안했을 텐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린 거다.
그래서 죽어도 되나보다 그리고 죽은 거다.
이 사람은 자기 내면의 신령한 소리, 가슴의 소리를 100% 신뢰한 거다.
신뢰한 나머지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했던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어리석게도 죽음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그것이 무언지는 모른다”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좋은 것일 수 있다.”
그러다 죽었다.
그래도 안에서는 아무 반대소리가 안 들렸으므로.
그래서 죽음 속으로 갔다. unknown 속으로!
그런데...
명상의 최종 목적은...
미안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잘 사는 거다.
답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참 잘 사는 거다. 참 재밌게 사는 것. 이게 최종 목적이다.
(to be continued)
뒤죽박죽된 머릿 속을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