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시간
마니푸라의 긴장과 정체로 고생을 했다.
평소 가까운 지인이 치료 의사를 밝혀왔고
치료비도 안 받고
오히려 타로과정 렛슨비도 마련해 주겠다는
물심양면의 호의와 배려로 제안을 했다.
망설이다가
지인과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작업을 하기로 했다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가
몇차례 번복 끝에 시작한 지점에
평소에 당뇨를 겪고 있는
지인의 눈에 염증이 심해졌다.
지인은 당뇨합병증을 걱정하면서
몇차레 작업과정의 번복과
눈의 염증의 원인이
모두 나의 무의식의 작용 때문이고 한다.
요지는
본인의 권유로 시작한 작업은
나의 무의식적 강요였고
작업일정의 차질은
나의 무의식적 변덕과 망설임의 결과고
본인의 눈의 염증 조차 나로 인한
데미지 탓이라는 결론이었다.
나는 전지전능한 능력자가 되었다.
본인은 나로 인해 고통을 겪는....
나의 무의식의 영향이건
본인의 피해의식의 결과건
치료를 중단하자고 단호하게 통보했다.
지인과는 비슷한 패턴으로
몇차례 관계가 단절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더욱 심화된 학습이었다.
기가막히고 황당한 체로 하루가 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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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긴장과 저항 분노로 몸이 굳어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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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로 향했던 주의가
나의 반응으로 모아지고
부당한 대상과 상황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반응했는가가
순간에 읽혀진다.
이글 거리는 화가 순간에 스르르 풀린다.
나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은
즉 밖에서 구하는 마음을 통로로
상황이 전개되고
그 상황이 나의 바램과 맞지 않을 때
그 반응의 데미지는
고스란히 자신의 몸이나 마음으로
겪는 구조가 읽혀졌다
내가 막고 단절한 것은
지인이 아니라
나를 막고
마니푸라를 동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낱낱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대나 상황이 나를 고통스럽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 고통을 혹은 평화를 경험하게 했다.
과정과 상관없이
지인의 작업은 성공을 했다.
서서히 소화도 되고
마니푸라의 긴장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용납하지 못하고
분노로 반응했던
모든 관계와 상황들이 떠오른다.
해결의 키는
상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반응에 있음을....
지인은
그저 지인의 삶을 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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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차례
지인을 거절하고 차단했는데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한
지인에게 감사를 보내며..^^*.
......()......
일상에서
너무나 타당하고 합리적인
상식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관념에서
너무나 정당한 에고의 구조를 만날 수있었다.
보이는 모습이 내 모습임을
받아 들이는데 늘~뭔가 찝찝했다.
보이는 모습에
내가 반응한
유통구조의 한 단게를 인식하면서
명확해 졌다.
본다는 것은
결국 나의 해석을 통해
실상이 왜곡되고
왜곡된 해석으로 겪게되는 상태가
고통이었다.
고통을 일으키는
자신의 반응구조를 통해
돈,
관계, 등
창조 과정의 비밀을
엿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