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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룬의 마음챙김 계발

조회 수 1035 추천 수 0 2015.03.24 03:38:59

<영어판을 기준으로 일부 번역이나 용어를 바꾸었습니다.

영한 대조를 다하지 못했으니 가능하면 영어판을 보세요.

보라색은 제가 강조했던 것입니다. 원문에는 없습니다.

절판된 책이고, 저작권이 없는 번역인듯하지만,

저작권에 문제가 되면 아래 순룬에 관한 글과 함께 삭제해주세요.>


                       순룬의 마음챙김 계발

   현대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욕망과 반감의 대상들이 강하고 다양화된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많은 감각적인 충동과 유혹의 기회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삶의 속도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긴장의 연속 속에서 노이로제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도시의 소음 공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소음은 집중하는 데 있어 목 안의 가시와 같다.

   또한 사람들은 마음챙김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주의력은 점점 더 분산되어지고 자그마한 행동을 개선하는 데에도 점점 시간적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정신력은 산만해진다. 결국 불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직관이 빠르다기보다는 둔한 편이다. 증가되는 충동, 자극적인 상품, 심해져가는 소음 공해, 산만함, 부족한 시간, 자신의 둔한 직관 등을 고려할 때, 마음집중의 방법은 절실히 요청된다.  <<위빠사나 열두 선사>>(고려원): 151

   순룬 사야도의 마음챙김은 나태와 감각의 욕망을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명상자의 주의를 전환시켜 소음과 산만함을 차단한다. 직관이 둔한 사람에게는 4념처를 완벽하게 확립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확실하고 신속한 방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책에서 이론적으로 얻는 방법이 아니라, 자기 애착과 무지에 대항하고 투쟁하여 체득하는 방법이다. 순룬 사야도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나약한 의식의 흐름에^ 병들지 않는 혜택을 누렸다. 강렬함과 용기 그리고 인내로서 그는 1920년에 해탈을 얻었다. 그 테크닉은 순룬 사야도와 같은 불퇴전의 용기와 인내가 없는 일반 시민에게도 현재 이용될 수 있다. 아래에서 그 방법에 대한 간단한 개요을 설명한다. 151^2


자세

   움직임 없이 몇시간이라도 지탱할 수 있는 명상 자세를 취하라.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기대지 말라. 자세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자세는 느슨해지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도록 취해져야 한다. 적절한 자세는 다리를 교차해서 앉는 것이다. 등은 똑바로 세워야 한다. 팔은 몸 옆에 가까이 붙인다. 오른쪽 손은 왼손 안에 둔다. 이것은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고통에 수행자가 힘을 내야 할 때 손을 꼭 잡기 쉽기 때문이다. 손가락끼리 깍지를 끼지 마라. 그리고 엄지 손가락끼리 가볍게 맞붙이려고도 하지 말라. 머리는 앞쪽으로 약간 숙이게 한다. 느슨하게 앉지 마라. 몸이 확고한 기반을 유지하여 움직이지 않고, 수행자가 정신을 성성하게 할 수 있는 탄탄한 자세를 유지하라.

   명상중에 아무런 방해없이 마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라. 바람이 없고 조용한 장소를 택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명상은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단체로 할 수도 있다. 장소를 정성들여 만들 필요는 없다. 의식을 거행해도 안된다.

   명상을 위해 특별히 정해진 시간은 없다. 시간은 명상자의 편의에 맞추어 정해진다. 명상 시간이 다른 목적을 위하여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구의 어떤 책에서 초보자는 하루에 2분 내지 3분의 시간으로 시작해서 차츰 늘어가야 한다고 제시한다.

   순룬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 집중적인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많은 좋은 결실을 낳는다. 보통 한두 시간 이하이다. 이러한 수련을 집중적으로 좌선하면서 하루종일 보낸다. 152

   자세를 고정한 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바꾸거나 변화를 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차례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해야 한다.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가려워도 긁지 마라. 피곤해도 쉬지 마라.”


호흡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호흡이 코끝이나 윗입술을 스치는 곳을 관찰해야 한다. 호흡이 스치는 곳에 예리하게 마음집중하라. 마음집중을 방심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호흡을 강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빠르게 하라. 강하고 격렬하고 신속한 호흡은 바깥 소음을 차단하고 마음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장애를 빨리 제거하고 집중력을 신속히 키우고 나중에 발생하는 불쾌한 감정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강하고, 힘차고, 신속하게 하는 호흡으로 인하여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코끝이나 윗입술 혹은 그 주위의 다른 부분에 닿는 마찰을 증가시킨다. 호흡이 닿는 부분에 마음을 집중하라.

   “호흡이 코끝이나 윗입술을 스칠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알아차림에 마음집중하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어떠한 감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서는 안된다. 매번 닿은 감각을 알아차려라. 마음집중은 빈틈없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느슨해져는 안된다. 더한층 나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153

   수행자는 강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숨의 통로를 주시하지 마라. 몸의 안과 밖으로 숨을 따르지 마라. 숨의 출입을 세지 마라. 숨이 닿는 곳이 코끝인가 혹은 윗입술인가를 알아차리려고 하지 마라. 오직 숨이 닿은 곳의 감각을 알아차리도록 하라. 마치 물이 주사기로 들어오는 것처럼 숨을 주의깊게 충분히 들이쉬라. 예리하게 내쉬라. 충분하고 강하게 숨을 들이쉬는 것은 집중력을 빨리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각이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불쾌한 감각과 투쟁하게 될 때 에너지를 준^다. 153^4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쉬는 숨이 강하므로 들이쉼과 내쉽에 균형이 되도록 들이쉬는 숨에 좀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들숨과 날숨이 균형되었을 때 감각은 계속 일어난다. 두 개가 균형을 이룰 때 수행자는 순일하고 노력없이 자체 힘에 의해 저절로 나아가는 호흡리듬에 도달한다.

   머리와 몸을 흔들지 말고 호흡하라. 이것은 집중력을 빨리 얻게 한다. 강하고, 힘차고 신속한 호흡의 초기단계에선 피로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호흡의 강도와 속도를 중지하지도 말고 줄이지도 말아야 한다. “피로할 때도 쉬지 마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피로는 불충분하게 숨을 들이쉬거나 혹은 과도하게 숨을 내쉼으로써 일어난다. 바로잡는 방법은 들숨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의 강도가 높은 수준에서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피로는 사라진다. 그때에 수행자는 호흡하기가 힘든 단계에서 벗어나 노력없이도 저절로 되는 순일한 호흡리듬의 단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나서 호흡이 스치는 곳에 마음이 집중되도록 모든 주의력을 기울인다.

   호흡에는 삼단계가 있다. 즉 강한 단계(매우 강하고, 매우 힘차고 신속한 호흡), 중간 단계(강하고, 힘차고, 신속한 호흡), 낮은 단계(미세하고, 부드럽고 완만한 보통의 호흡)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때로는 느슨해지고 싫증이 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강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 나중에 속도가 떨어질 때 균형된 중간단계에 이르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154

   호흡을 위한 시간을 미리 정하지 마라. 강하고 신속한 호흡을 하면 곧 불쾌한 감각이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불쾌한 감각은 고통, 경련, 아픔, 저림, 열이나 차가운 것, 기타 다른 감각들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충분한 감각이 일어나 강한 호흡이 정지되어도 될 때까지 호흡을 계속하라. 여기 일어나는 감각은 호흡하는 시간을 정하게 하는 시계다. 대체적인 방법으로 호흡하는 시간을 45분이나 1시간으로 미리 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몇시에 2번째 명상시간을 계속할 것인지를 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첫번째 방법만큼 좋은 것이 아니다. 154^5

   50에서 100번 강한 호흡을 하고 나면 그만 둘 때가 된다. 이때는 수행자가 전심전력해서 해야 한다.반면 호흡이 닿는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들이쉰 호흡에서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몸 전체 내부로 향해서 관찰한다. 155


감각

   호흡은 들이쉰 호흡에서 완전히 그리고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몸은 고요해지고 가라앉아야 한다. 빈틈없이 계속 전심전력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아픈 감각, 경련, 쑤시는 것, 저림, 열기나 찬 기운이 몸에서 일어난다. 가장 현저하게 느끼는 감각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무심코 지나치지 말아라. 배꼽이나 태양신경총 혹은 다른 어떤 지점으로 주의를 옮기지 말아라. 가장 뚜렷한 감각에 주의가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각이 가장 현저하지 않은 곳으로 주의를 돌리면 현재를 즉각 파악하는데 지체된다.

   순룬 사야도는 “만약 감각이 약해지면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려라. 만약 강해지면 강해지는 것을 알아차려라”고 말했다. 더함도 덜함도 아닌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려라. 무엇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본래 그대로 알아차려라. 단지 이것에만 마음집중하라. ‘나’라는 생각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것은 자신의 발, 자신의 손,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은 몸과 마음이다”라고 결론내리지 말아라. “이것은 무상이고, 고이고, 무아이다”라고 분석하지 말라. 모든 생각, 기억, 분석하는 것은 개념이다. 그러한 것들은 지혜 명상이 아니다.

   순룬의 방법은 실재와 단도직입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접촉한다. 사실에 접근하기 위하여 개념적인 교량을 먼저 세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코끼를 찾아나설 때 발자국을 뒤쪽으로 따라가지 않고 곧장 코끼리 쪽을 향하여 추적해 가야 한다. 아픔이 일어날 때는 아프다는^ 사실을 즉각 감지한다. ‘아픔’, ‘아픔’이라는 개념을 공식화한 후 아픔의 사실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명상자에게 말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을 피하라. 있는 그대로를 개념화하지 말라.” 155^6

   감각을 잡으려고도 하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라. 지금 감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바로 그 곳에 마음을 집중하여라. 불쾌한 감각과 싸울 때 극단적 힘과 악한 마음으로 분노하여, 자신의 감각을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이것은 확고한 주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요 이상의 과도한 노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과도한 노력이 있을 때는 명상자의 노력은 불쾌한 감각을 벗어난다. 그 결과로 주시는 감각 자체로부터 이탈되고 격렬한 노력만이 남는다. 이 격렬함은 다름아닌 화냄이다. 화냄은 윤회의 수레바퀴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조건이다.

   다른 한편으로 명상자는 감각이 일어나는 곳에 밀착되지 못하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이것은 확고한 주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의 양에 못 미치는 것을 말한다. 노력이 불충분할 때 명상자는 혼침과 무기에 빠지거나 혹은 감각이 강렬할 때는 불쾌한 감각에 의하여 압도된다. 마음집중이 되지 않는 감각들은 두려움과 걱정과 화냄을 불러 일으키고 이러한 모든 것이 윤회의 수레바퀴로 들어가는 하나의 조건을 만든다.

   무기와 나태함은 무명에 바탕을 둔다. 이것은 미망과 다시 태어남을 만드는 또 하나의 조건을 형성시켜 준다. 그러므로 명상자는 감각을 넘어서지도 말아야 하고 못 미쳐서도 안된다. 지혜와 집중에 필요한 박력있고 용의주도한 노력을 발휘해야 한다. 감각에 주시하는 시점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단순하고 즉각적인 현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감각에 수동적으로 주시하거나 미래로 분리시키지 않고 감각이 발생하는 바로 그곳을 능동적으로 관통할 때 이것이 실현된다. 156

   많은 감각이 머리․팔․몸․다리 등에 동시에 일어날 때 지도받지 않은 명상자는 마음이 허둥지둥 감각들을 좇아갈 것이다. 바로 지금 감각이 일어나는 곳에 마음집중이 안될 것이다. 그 결과로 개인적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이러한 것을 피하기 위하여 가장 현저하게 느껴지는 감각에만 마음집중을 해야 한다. 기운찬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은 용의주도하게 빈틈없이 마음집중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수행자는 이 감각을 파고 들어서 그 본성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판자에 못을 박는 비유가 있다. 나무는 감각이고 못은 마음이고 못을 똑바로 잡은 손가락은 마음집중이며 망치는 노력이다. 156^7

   마음이 감각을 관통했을 때, 수행자는 더이상 발이나 팔, 혹은 몸의 형태를 느끼지 않는다. 더이상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들 개념들은 단순하게 명백한 알아차림으로 대치될 것이다. 고통받아오던 ‘나’라는 개념이 제거됐기 때문에, 불쾌한 감각이 더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에 아프고 뜨겁게 느껴졌던 감각이 지금은 고통없이 강한 감각으로만 느껴진다.

   세 가지 감각 즉 불쾌한 것(苦), 즐거운 것(樂), 중립의 것(非苦非樂) 중에서 중립적인 것이 가장 미묘하다. 마음집중을 일반인에게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최초의 대상으로 중립적인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계속해서 지혜 계발을 해 감에 따라 감각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일어남과 동시에 그리고 일어난 바로 그 감각의 자리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는 수행자가 미묘한 중립적인 감각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 왔어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쾌한 감각은 위빠사나의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이다. 명상자가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때라야만 고통을 넘어선 보답을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은 불쾌한 감각을 완전히 극복하고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배울 때 가능하다. 불쾌한 감각도 무상의 법칙을 따르므로 그것도 곧 소멸하게 된다. 157

   이러한 소멸은 여러 형태로 일어난다. 감각의 강렬함은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소멸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불쾌한 감각은 남아 있을 것이다. 불쾌한 감각에 대한 진정한 극복은 수행자가 감각 속에서^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감각을 관찰할 수 있을 때, 감각은 소멸되어 끝이 난다. 마치 밧줄이 끊어지듯이 뱀이 허물을 벗듯이, 기름이 다 소진되듯이 그렇게 종식된다. 감각이 차츰 가라앉아서 다 소진되었을 때가 감각이 다한 것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더 이상 느낄 것이 없을 때 끝이 난다. 마치 길을 가다가 다다른 곳에 올 때나, 긴 밧줄을 따라 잡다가 더 이상 잡을 곳이 없을 때처럼 될 때와 같이 감각이 완전히 소멸된다. 그것이 떨어질 때는 굵은 밧줄이 갑자기 잘라지듯이,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기름이 다한 불이 꺼지듯이 소멸되어 버린다. 157^8

   고통은 불편하다. 아픔도 불쾌하다. 뜨거움도 불쾌하다. 차가움도 불쾌하다. 이러한 모든 불쾌함 속에 불편한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들의 모든 경험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잠재되어 있는 불편의 요소이다. 다리에 피곤함을 느끼는 수행자는 자세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그의 마음이 감각의 작은 부분에 한정되어 있을 때는 불편한 자세와 제한된 마음에서 벗어나려는 관능의 대상을 찾아나설 것이다.

   편안하고 즐거운 감각들을 갈망함으로써 어떻게 깨달음을 성취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당신은 언제까지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헤매이게 될 것이다”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씀했다. 그는 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의 효율성에 관해서 언급했던 것이다. 어떻게 불쾌한 감각을 소멸하고, 종식시키고, 벗어나고, 끊어버리고, 소진시키기 위하여 불쾌한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을 해야 하는가? 158

   유일한 대답은 수행자가 불쾌한 감각이 일어나는 대로 즉각 불쾌한 감각에 빈틈없이 마음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쾌한 감각에서 벗어난 확고부동한 마음을 유지하는가? 어떻게 불쾌한 감각이 얼어나는 순간 일어나는 대로 즉각 포착하는가? 우선, 불쾌한 감각에 마음집중하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둘 다 완벽하게 정지(靜止)시켜라. 숨을 가라 앉히고 불쾌한 감각을 관찰하라. 자연스럽게 호흡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호흡을 유지하여라. 이것은 호흡을 억제하는 훈련이 아니다. 무엇인가 지대한 주의력을 가지고 행할 때 호흡은 자연스럽게 가라앉게 된다. 예를 들면, 바늘구명에 실을 꿸 때 사람들은 보통 숨을 멈추게 된다. 이와같이 수행자는 숨을 죽이고 불쾌한 감각을 관찰해야 한다. 158^9

   이런 수련을 통하여 보다 더 깊은 알아차림과 보다 더 엄격한 마음집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불쾌한 감각이 너무 강렬하여 숨을 죽이고 적절한 마음집중을 할 수 없을 때는 수행자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을 재무장해야 한다. 마음챙김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 감각에 대항해서 전신을 강화시킨다. 양 손을 양 옆구리에 단단히 갖다 댄다. 주먹을 꽉 쥐고 목을 바로 세우고 입을 꽉 다문다. 완강한 적과 대항해서 싸울 때처럼 에너지를 강화시킨다. 항상 감각에 엄격하게 마음을 집중시킨다.

   만약 불쾌한 감각이 계속 괴롭히고 호흡의 조절과 강화된 몸의 자세로도 극복되지 않는다면 수행자는 그에 대항해서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 강하고 단호하게 호흡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불쾌한 감각에 집중시킬 때도 강하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 감각에 대적하기 위해서 호흡과 몸과 마음의 모든 힘을 동원해야 한다. 숨을 죽이고 몸을 긴장시키고 마음을 강화하여 감각을 투과하여 그 속에 머물면서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을 때까지, 마침내 감각이 완전히 소진되어 종식될 때까지 감각의 압박에 대항해서 노력을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행자는 불요불굴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는 강렬하고 열성적이고 진지하고 정력적이어야 한다. 붓다가 그의 제자에게 요구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미혹으로부터 탈출은 사려깊고 느슨한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느낟. 그것은 명상자의 명령에 따라 가장 용맹스럽고 불퇴전하는 전심전력의 정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순룬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159

   명상에서 마음대상과 관련해서는 전념이 요구되지만 감정적인 느낌을^ 관찰하는 데는 반드시 육체적 힘을 분발시키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끊임없는 마음집중을 위해서는 열망적이고 간절한 마음을 북돋아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들을 계발하기 위해서 불쾌한 감각의 수련은 도움이 된다. 이 수련을 하는 명상자에게 감정적인 느낌을 수련하는 마음집중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더구나 감정은 항상 불쾌한 감각을 동반하기 때문에 명상자는 그의 집중을 육체적인 감각에 전환해야 한다. 그리하여 불쾌한 감각을 정복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집착을 극복한다. 159^160


감각을 넘어서서

   수행자가 완벽하게 감각 속에서 머물고 감각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없이 관찰할 때에 그리고 감각에서 벗어나고 감각이 완전히 소진될 때 수행자의 마음을 정화되고 청정해지고 확고부동하게 되며 자비로워진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자비를 베풀 수 있으며, 그들과 진정한 자비 속에서 충만해질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의 반복이 아니며 욕심과 아집의 소멸이며,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무심한 사람들 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160

정화되고, 청정해지고, 부동하게 되고, 자비로워진 마음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한다.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욕과 성냄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마음을 집중하면 더이상 새로운 탐욕과 성냄을 못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어 또다른 윤회의 수레바퀴에 들지 않는다. 이것이 결과에서 원인적인 요소를 말살하는 것이다. 탐욕이나 성냄을 일으키는 대상과 접할 때 수행자는 단호하게 여기에 마음집중하여 탐욕과 성냄을 일어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원인에서 원인을 말살하는 것이다. 후자의 마음집중법으로 경전 상에 있는 것을 완벽하게 수련할 수 있다.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에서는^ 오직 들리는 것만, 감각되어지는 것에서는 감각되어지는 것만, 생각되어지는 것에서는 생각되어지는 것만이 있어야 한다.” 160^161

   수행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쾌한 감각에 대하여 집요한 마음집중을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정화해 왔고 흔들림 없고 자비스러운 마음을 길러 왔기 때문이다. 둔한 직관을 가진 보통의 수행자가 처음으로 마음집중법을 수련할 때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마음은 미묘한 관찰 대상이므로 정화되지 않고 연약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으로는 신속하게 포착되거나 잡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자의 마음이 불쾌한 감각에 마음집중함으로써 강화되었을 때는 보이는 것에서는 보이는 것만을, 들리는 것에서는 들리는 것만을, 생각에서는 생각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만약 마음집중 수련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을 관찰해야 된다고 배운다. 이론적으로는 매번 망상을 마음집중하여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행에선 어떠한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망상에 마음집중하기가 극히 어렵다. 만약 집중력이 강하다면 본래의 명상대상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망상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는 망상에 이끌려 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망상에 마음집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위험에 종종 빠진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본래의 명상 대상인 감각이나 접촉 부분에 더 잘 마음집중하기 위하여 더욱 용맹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망상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는 망상에 이끌려 가고 있는데 그 자신은 망상에 마음집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위험에 종종 빠진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본래의 명상 대상인 감각이나 접촉 부분에 더 잘 마음집중하기 위하여 더욱 용맹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법(mental elements)의 관찰에 있어서는 마음의 관찰보다 훨씬 더 미묘하다. 법에 대한 관찰은 감각에 대한 강렬한 마음집중에서 연마된 수련이 있어야 한다. 감각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5가지 장애의 마음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161

   감각이 소멸되고 종식되었을 때는 7각지분(七覺支分)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명상자는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만약 ‘성냄’이 일어날 때는 명상자는 그것을 ‘성냄’이라고 관념으로 주^시하지 않고, 단지 성냈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만약 7각지 중 평등각의 요소가 일어났을 때는 명상자는 빈틈없이 평등각의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곳에서도 명상자는 그의 의무를 잘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 수련을 통하여 강한 삼매와 맑고 확고부동한 마음을 계발해 왔기 때문이다. 161^2

   사실 몸[身], 감각[受], 마음[心], 법[法]의 사념처는 각각 독립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함께 공동으로 발생한다. 명상자가 감각의 알아차림에 마음집중하고 있을 때 감각 속에 신·수·심·법이 들어 있다.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명상자는 다른 모든 것에 집중한다. 그것은 마치 과즙의 유리잔 속에 물·레몬·설탕·소금의 네 가지 요소가 공동으로 함께 들어 있는 것과 같다.

   하나의 요소가 현저히 많을 때 그 과즙은 물이 많다든가, 시다든가, 달다 혹은 짜다라고 부른다. 감각이 현저할 때는 감정에 대한 마음집중이라고 부르고 마음이 현저할 때는 마음에 대한 마음집중이라고 한다.

   4념처가 완성되었을 때 7각지분이 완전히 계발된다. 7각지가 완성되었을 때 명상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결과이다. 순룬의 마음집중법에 대한 간단한 개요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제공되지 않는다. 만약 망고 씨가 뿌려지면 망고 나무는 싹이 틀 것이다.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망고 씨를 뿌리는 데에 우리는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결과는 저절로 온다. 162


결론

   순룬의 마음집중법은 열렬한 비구와 신도들에 의해서 수련되고 있다. 열렬함의 강도가 다소 떨어진 명상자에게는 수도원에서 하루에 5번 내지 7번의 정진시간을 제공하나, 한 번의 정진시간은 1시간에서 3시간 계속된다. 사업이나 일로 너무 바쁜 사람은 하루에 두 번 수련할 수 있다. 반면 정진과 정진시간 사이에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162

명상자는 계속해서 마음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닿는 감각에 마음집중함으로써 이것을 성취할 수 있다. 하루 중 한순간도 몸에 감촉없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만약 앉아 있다면 몸은 의자에 닿아 있을 것이다. 누워 있다면 머리가 베개에 닿아 있을 것이다. 걸을 때는 발이 매 걸음마다 땅에 닿을 것이다. 만약 도구나 물건을 다룬다면 손가락이 닿을 것이다. 명상자는 의자에 닿은 몸의 감촉, 베개에 닿는 머리의 감촉, 땅에 닿는 발의 감촉, 물건이나 도구에 닿는 손가락의 감촉 등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가능하면 눈에서는 시각, 귀에서는 청각, 입에서는 미각, 코에서는 후각의 감촉에 마음집중하여야 한다. “감각의 알아차림에 단호하게 마음집중하라”고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163

   순룬의 방법은 단순하다. 선을 긋거나 원을 그리는 것만큼 간단하다. 어린애들까지도 연필로 종이에 처음부터 원이나 선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직선이나 동그라미 원은 극히 어렵다. 그러나 간절한 열망과 열성으로 수련한다면, 결과는 빨리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방법들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수련하기는 쉬울지라도 결과는 천천히 온다.

   순룬의 방법은 설명하기가 쉽다. 순룬의 방법에 이론적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얀마어로 된 팸플릿에서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순룬의 생애에 대한 것으로는 소책자가 하나 있다. 그 방법은 설명하기가 용이하므로 이론적인 것은 거의 없다. 따라서 책은 많이 씌여지지 않았다.

   순룬의 방법은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수행의 순서가 복잡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순서도 간단하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단지 그 방법이 느슨하고 편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강한 호흡의 어려움과 불쾌한 감각에 맞부딪칠 용기와 그것들을 극복할 용맹심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요불굴의 마음집중을 요구한다. 이것을 잘 할 수 있을 때, 수행은 잘 된다. 결과는 급속히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순룬은 실재와 즉각적익 단도직입적으로 접촉하게 하고 수행자의 열망을 북돋아서 강렬한 속도로 진보하게 하기 때문이다. 163

   오늘날과 같이 무엇을 위해서라도 시간을 거의 내지 않는 게으른 사람과 개념화, 논리성, 합리성으로 인하여 더욱더 근원적인 실재로부터 멀어진 사람에게 순룬은 많은 것을 제공한다. 그것을 실재를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그의 사고 체계를 버리게 한다. 그것은 단호하게 하고, 유연하게 하며, 그의 거대한 육체·정신적 잠재력을 사용케 한다. 변화무쌍한 삶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과 힘을 준다. 모든 불행과 불만의 원인인 ‘나’에 대한 어리석은 애착인 미혹의 심장부를 강타한다.

   순룬은 강렬하고, 불퇴전의 용맹스러운 방법으로 4념처를 확립하여 본성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불행을 극복하게 하고, 고통과 비탄을 소멸시키고, 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을 이루도록 한다.

   “감각의 알아차림에 빈틈없이 쉬지 말고 마음집중하라.” 164


DEVELOPING THE SUNLUN WAY OF MINDFULNESS

 

In  this  age, the  objects  of desire  and  aversion  impinge  upon  the  senses  with increasing  force  and growing variety. There is a greater urge and opportunity for the gratification of the senses. The accelerating pace of living and the increasing pressure create stresses leading to anxiety and neurosis. City life  is  becoming  noisier and noise  is  a thorn  in the  flesh  of concentration. At the  same time  the people do not have enough leisure for a long and sustained practice of mindfulness. The result is an increasing  diversion  of the  attention  and diffusion  of mental  powers  with less  and less  time  even for minimum corrective action. To cap it all, people who are born in these days long after the Buddha are of sluggish  intuition  rather  than  of  quick  intuition.  Therefore  there  is  an  urgent  need  for  a  way  of mindfulness which takes into account the growing urges and commodities for sense-gratification, increasing noise and distraction, lack of time, and the meditators own sluggish intuition.

Sunlun Sayadaws way of mindfulness provides a technique to quickly overcome sloth and desires of the senses. It raises the threshold over which noise and distraction must pass to divert the attention of the meditator. For the man of sluggish intuition  it provides an amazingly sure and rapid method for the complete and perfect establishment of the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 It is not a method fashioned out of the elements available in the books. It is a method forged in the struggle against self- love  and ignorance. Sunlun  Sayadaw was a barely  literate  man and was thus  blessed  by not being sicklied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With  earnestness,  courage,  and  perseverance  he became liberated  in 1920.  The technique  is  now  available  to the  city man who is  without the  overwhelming courage and perseverance of the Sunlun Sayadaw. What follows is a very brief sketch of the method.

 

Posture Assume a meditative posture which can be maintained for some time without change. Do not lie in bed nor recline in a chair. The posture should be one which will permit the gathering together and assumption of all of ones resources. The posture should be one designed for hard work and not relaxation. A suitable posture is to sit with legs crossed. The back should be straight. The arms should be held  close  against  the  side  of the  body.  The right  fist  should  be held  in the  left  hand.  This  is  to facilitate  the  clenching  of  the  fist  as the  meditator  summons  his  strength  to  combat  unpleasant sensation which may arise later. Do not mesh the fingers of the hands nor hold them lightly with each thumb against the  other. Let the  head be slightly  bowed. Do not sit loosely. Assume a tight posture where the body provides a firm base, its circuit is closed and the meditator is alert.

Select  a  spot  where  the  meditation  session  can  be concluded  without disturbance.  It  is  better  to select a quiet place out of the wind, but that is not essential. Meditation may be done individually or in a group. No elaborate preparation of the place is required nor should it be made a ritual.

There are no set periods for meditation. Time should be arranged to suit the meditators convenience. But he should take care that the meditation hour or two is not sacrificed to some other purpose. Western books suggest that the beginner should start with a session of two or three minutes a day, the period to be gradually  extended.  Sunluns  experience  is  that an  intensive  initial  session  of  an  hour  or  so produces more beneficial results. A normal session should not be less than an hour or two. Those practicing intensively sit through the whole day or night.

After the posture has been selected and assumed it should not be changed or altered in any way. It will have to be kept up until the end of the session. Sunlun Sayadaw has said: If cramped dont move, if itchy dont scratch, if fatigued dont rest.

 

Breathing Commence by inhaling. It will  be noticed that the breath touches the nostril tip or upper lip. Be keenly  mindful  of the  touch  of breath.  With  mindfulness  vigilantly maintained,  breathe  strongly, firmly,  and  rapidly.  Strong,  hard,  and  rapid  breathing  wards  off external  noises,  helps  to control  the mind, quickly removes the hindrances, rapidly establishes concentration, and enables the meditator to cope with the unpleasant sensation which may arise later.

Strong,  hard,  and  rapid  breathing  will  cause inhaled  and  exhaled  breath  to touch  with increased friction against the tips of the nostril holes, the upper lip, or some other part of the body in that region. Be mindful of that touch of breath.

When the breath touches the nostril tip or upper lip you will be aware of it. Be mindful of that awareness, said  the  Sunlun  Sayadaw. Let not a single  touch pass without awareness. Be aware  of every  single  touch. Mindfulness  should  be rigorous.  It  should  not be relaxed.  This  means that there should be putting forth of energy, that the meditator should be ardent and zealous.

Do not let the awareness be of the breath-body. Do not follow it in and out of the body. Do not count its entrances and exits. Do not take note of the area of touch of breath whether it be the nostril  tip or upper lip. Let awareness be only of the sensation of touch of breath. Be mindful only of the sensation of touch.

Breathe in air attentively and fully as though water were being drawn into a syringe. Exhale sharply. Full and hard  drawing-in  of breath  helps to establish  concentration  rapidly. It helps the  sensations to arise. It provides strength in the coming struggle with unpleasant sensation. Since most people have stronger exhalation it is necessary to pay greater attention in inhalation to realize a balance between inhalation and exhalation. When these two are balanced, the touch will be continuous. When they are balanced, the meditator will have reached the stage of smooth, effortless, self-compelled rhythmic breathing. Breathe without shaking the head and body. This will obtain concentration quickly.

Fatigue may set in at the early stages of strong, hard, rapid breathing but the meditator should neither stop nor reduce the strength and rapidity of breathing. Dont rest when fatigued, said the Sunlun Sayadaw.  The fatigue  is  probably  due to  either  insufficient  strength  of  inhalation  or  to  excessive blowing on exhalation. The remedy is to increase the strength of inhalation. When inhalation and exhalation  strengths  are  balanced  at a high  level, the  fatigue  will disappear. The meditator will then have broken out of the zone of difficult breathing into the zone of smooth, effortless, self-compelled rhythmic breathing. Attention can then be addressed wholly to mindfulness of touch of breath. There are three levels of breathing: high (very strong, hard, rapid breathing); medium (strong, hard, rapid); and low (weak, soft, slow, or the common  way of breathing). Since man is not a machine he will sometimes flag and falter. It is necessary to reach the high level early so that later, when the pace falls, the meditator will reach the balanced, medium level of respiration and be able to maintain it.

Do not preset the time for breathing. On firm, rapid breathing, unpleasant sensations will rise within oneself. These unpleasant sensations may assume the forms of pain, cramp, ache, numbness, heat or cold,  or  some other  sensation.  Continue  the  breathing  until  there  is  sufficient  sensation  to stop  the strong respiration. Here sensation is the clock to time the period of respiration. Alternatively, the meditator may preset the time for breathing, say three-quarters of an hour or an hour, at which time he will proceed to the second part of the meditation. But this is not as preferable as the first method.

When it is  about time  to stop  strong  respiration, 50  or 100  strokes  of breath  should  be madethis time with all the strength at the meditators command. Meanwhile, mindfulness of touch of breath should be relentless.  Then  respiration  should  be stopped  suddenly  on  the  inhaled  breath  and,  collecting oneself, the whole body should be watched internally.

 

Sensation  Respiration  should  be stopped  completely  and  suddenly  on  inhaled  breath.  The  body should be stilled, gathered together, and watched rigorously. Sensations of pain, cramp, ache, numbness, or heat or cold will arise in the body. Be mindful of the most pronounced sensation. Do not let it go. Do not switch the attention to the navel, the solar plexus, nor any other region. It is natural for the most pronounced sensation to demand ones attention. Turning to the other regions which do not have the most pronounced sensation makes one lose grasp of the immediate present.

If the sensation is weak, know the fact of its weakness. If the sensation is strong, know the fact of its strength, said the Sunlun Sayadaw. Know neither less nor more. Know it only as it is. Know whatever arises, as it arises, when it arises, in the bare fact of its arising. Be mindful of just this. Let no thoughts of

me and mine interfere. Do not think that this is ones foot or ones body or ones hand. Do not reflect this is body and mind. Do not consider this is impermanence, this sufferingness, and this non-self.All thinking, reflection, and consideration are conceptual. They are not insight practice.

Sunlun makes direct, immediate contact with reality. It cannot afford the time and effort required first to build a conceptual bridge to approach reality. Confronted with the elephant of its search, it does not follow the footprints backwards and then retrace them again to the elephant. When there arises an ache it immediately catches hold  of the  fact of the  ache; it does not formulate  the  concept aching, achingand then return to the fact of the ache. Therefore it tells the meditator: Avoid name-calling; do not conceptualize reality.

Neither reach toward the sensation nor reach after it. Be mindful of the sensation in the immediacy of its arising or vanishing which is in the present time, the now. In the struggle with unpleasant sensation which  may  rage  with extreme  force  and  virulence  the  meditator  takes  care  that he does not reach beyond the sensation. This is to say that the effort exerted should not exceed that which is necessary to maintain firm attention. When there is an excess of energy it is as though the meditator had placed his effort before  the  unpleasant sensation, with the  result that the  attention  slips  from the  sensation  itself and all that remains is the violence of his effort. This violence is none other than anger. And anger is one of the forces which turn the wheel of samsara.

The meditator should take care on the other hand that he does not fall short of the sensation. This is to say that the effort exerted should not fall short of that which is necessary to maintain firm attention. When the effort is inadequate the meditator slips back into torpor and sloth or is overwhelmed by the unpleasant sensation if the sensation is intense. Severe unpleasant sensation which is not held with mindfulness gives rise to fear, anxiety, and anger, which all constitute a force which turns the wheel of samsara. Torpor and sloth  are  the  basis  of ignorance, yet another force  which  conditions  rebirth  and delusion.

Therefore the meditator must take great care not to reach beyond nor fall short of the sensation. He must exert that forceful  and vigilant attention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is  means that the  time  relation  of attention  to sensation  should  not be one of future  or  past  but of the  simple, immediate present. This is realized when, instead of being passively attentive to the arising of the sensation and to its disintegrating future, the meditator tends actively to perceive the very birth of the sensation.

When dealing with the arising of many sensations simultaneously, such as in the head, the arm, the body, and the legs, the unguided meditators mind will run helter-skelter after them and there will be no mindfulness of them right here and now. The result will be personal distress and suffering. To avoid this there should be mindfulness of only the most pronounced sensation. Vigorous awareness of it should be aroused  and this  awareness  vigilantly watched  by mindfulness.  The meditator  should  be able  to penetrate into the sensation to realize its nature. Effort is required to do this. The simile is of a nail being driven into wood. The wood is sensation, the nail is the mind, the finger which holds the nail straight is mindfulness, and the hammer is effort.

When the mind has penetrated into the sensation, the meditator will no longer feel the form of his foot, arm, or body; he will no longer feel that I am suffering. These conceptual notions will be replaced by a simple,  clear  awareness  of  sensation  alone.  Because the  idea  of  an  I   which  suffers  has  been removed, the meditator will not feel the discomfort of the unpleasant sensation. The sensation which a few  moments  ago  was felt  as pain  or  burning  will  now  be felt  by the  meditator  only  as an  intense sensation without the element of infliction.

Of the three sensationsunpleasant, pleasant, and neutralthe last is most subtle and not normally suitable for ordinary people as an initial object for the establishment of mindfulness. When it arises in the succeeding stages of development the meditator will have to be mindful of it as it arises and when it arises. But by then the meditator should have developed the power to grasp subtle neutral sensation.

As we have noted,  unpleasant  sensation  is  the  greatest  obstacle  on the  road  of Vipassana.  Only when the meditator is able to overcome that obstacle can he forge forward to attain the rewards beyond unpleasant  sensation.  It  is  possible  to  completely  overcome  and  learn  from  unpleasant  sensation. Since unpleasant sensation too is subject to the Law of Impermanence it must come to an end some time. This end can occur in various ways. Its intensity can subside; but this would not be a true ending. Some measure of unpleasant sensation would remain. The real  overcoming of unpleasant sensation takes  place  when the  meditator dwells  in the  sensation, watching  the  sensation  without thinking any thought connected with the sensation, and it is consumed, it ends, it snaps, it is shed or extinguished. It is  said  to  be consumed when it  gradually  subsides  until  there  is  no  remainder.  It  ends  when the meditator follows it until  there is no more of it, like a road followed to the end, like a length of string felt along the whole length till no more is felt. It snaps when it breaks off suddenly, as when a taut rope is snapped. It is shed like the skin of a snake. It is extinguished like a light which has used up its oil and wick.

Pain is unpleasant, ache is unpleasant, heat is unpleasant, cold is unpleasant. Within the unpleasantness of all these there is an element of discomfort. It is this underlying element of discomfort which is basic to all our experience. The meditator who feels fatigue in his limbs and wishes to alter his position,  or  whose mind  being  confined  to the  narrow  point  of touch  wishes  to be let  loose  among sensual objects, desires escape from the discomfort of his posture and confined mind. But how can one attain  enlightenment  and  escape from  the  pain  of  this  mind-body  process  by  hankering  after  the delights and comforts of the senses? The uncomfortable truly is the norm; the comfortable will set you all adrift on the current of samsara, said Sunlun Sayadaw. He was referring to the efficacy of suffering to overcome suffering.

How should one be mindful of unpleasant sensation in order to consume it, end it, snap it, shed it, extinguish  it?  The  only  answer  is  that the  meditator  should  be  rigorously  mindful  of  unpleasant sensation as it arises, when it arises, in the here and now. But how does one hold steadfast the mind which flinches from unpleasant sensation? How does one catch unpleasant sensation in the very moment of its arising in the very manner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