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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룬 사야도: The Yogi & Vipassana

조회 수 1031 추천 수 0 2015.04.04 03:43:30

* 첨부된 파일의 번역입니다.  첨부된 파일을 기준으로 일부 번역을 고친 것은 녹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수행자의 지혜명상

   명상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겠다. 이 문제를 순룬 사야도의 수행법에 따라 수행자의 관점, 즉 수행자의 성향과 성격, 수행상에 부딪히는 문제와 어려움, 사소한 관심과 집착 그리고 미묘한 자기 기만의 관점 등에서 고찰해 보겠다.

   수행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집중력이다. 왜냐하면 집중된 마음이 곧 청정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의 장애요소, 즉 탐욕, 성냄, 혼침과 무기력, 불안과 회의를 정화한 마음만이 위빠사나의 지혜를 완성한다. 마음을 정화하는 데는 집중의 대상이 필요하다.

   이 집중의 대상에는 2가지 종류(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있다. 그 하나는 몸과 마음 밖에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색원반, 시체, 매일 먹는 음식과 같은 외부적인 것들이다. 그 다음의 대상은 수행자의 몸과 마음 그 자체이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어떠한 것도 명상의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색원반을 택할 수 있다. 수행자가 색원반이나 반점을 채택했다고 하자. 그리고 약 3야트 정도의 적당한 거리에 그것을 둔다.

                             <<위빠사나 열두 선사>>(고려원):  134

   그는 다리를 포개어 앉는다. 원반을 향하여 몸을 바로 세우고 눈을 너무 크게도 작게도 아닌 상태로 뜨고 그 원반을 응시한다. 마음 속에 하나의 고정된 상을 얻기 위하여 그 원반에 마음이 고정되도록 열심히 노력한다. 마침내 눈을 감았을 때도 원반에 대한 마음의 영상을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이것을 수련한다. 이것이 처음 얻는 상이다. 계속해서 이 상에 대하여 집중하면 더욱 분명하게 대응된 상이 나타난다. 이 대응된 상이 집중된 마음과 함께 나타난다.

   만약 그 상을 멀리 보려고 하면 멀리 본다. 만약 이것을 가까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내부에, 바깥에, 위에, 아래에 어디에서든 원하는 대로 관할 수 있다. 대응된 상을 얻은 후에 수행자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잘 호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계속 수행하여 익숙해질 때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강한 삼매력을 얻는다. 그 결과 확고부동한 선정이 온다. 이러한 훈련으로 사마타 즉 집중(선정) 명상의 모든 단계를 성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흙[地]이나 물[水], 불[火] 등을 대상으로 해서 수련할 수도 있다. 흙을 대상으로 수련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 중 하나는 사람이 땅 위를 걷듯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신통력이다. 만약 물에 집중하여 신통력을 얻는다면 비를 내리게도 할 수 있고 물로써 몸을 씻게도 할 수 있다. 불에 집중 수련하여 신통력을 얻는다면 연기나 불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위빠사나 열두 선사>>(고려원): 135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환경에서 이러한 능력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수련을 통해서 높은 선정력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수행상의 결과로 신통력을 얻기가 어렵다. 흙에 대한 수련을 한다고 하자. 그는 상(像)을 얻는 데 마스터했다. 연못으로 가서 연못 근처에 앉아서 흙에 대한 명상을 한다. 그리고 나서 연못 위에 물을 본 후에 물을 흙으로 바꾸려 한다. 그 자신이 물 위를 걸으려고 시도했을 때, 기껏해야 물이 진창 정도로만 두터워져서 그의 양 발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 다른^ 나라 수행자들은 더 잘 할지 모르지만 나는 4대 요소와 색상 수련으로써 모든 능력을 얻기는 우리 시대에는 이미 어렵다고 믿는다. 135^6

   또 다른 명상의 대상은 시체나 죽음에 대한 부정관이다. 이러한 수련은 위험을 수반한다. 이런 예는 순룬 사야도와 한 승려와의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승려는 시체를 관하기 위해서 무덤과 사원 사이로 흐르고 있는 시내를 건너서 매일 무덤가에서 시체관을 했다. 어느날 아침 순룬 사야도가 그를 만났다. 그때 그는 매일하는 명상을 여느 때와 같이 시작하려고 했다. 순룬 사야도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나빠나 호흡수련은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그 제안에 따르지 않고 시체를 관하는 수련을 계속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그의 방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방안을 봤을 때 공포에 질린 고함을 질렀다. 문지방에 시체가 누워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체는 그의 명상 대상에서 얻은 환상에 불과했다. 순룬 사야도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호흡에 대한 명상은 위험이 없다.”

   4가지 원소를 분석함으로써 명상을 할 수도 있다. 흙의 본성에는 딱딱함, 견고한 부동성, 안정감 그리고 지탱하는 것의 성질이 있다. 물의 본성에는 흐르는 것, 습한 것, 유동적인 것, 똑똑 떨어지는 것, 침투하는 것, 불리는 것, 흐르는 접착성의 성질이 있다. 불의 본성에는 열, 따뜻함, 기화, 익히는 것, 태워버리는 것 등의 성질이 있다. 공기의 본성에는 뜨는 것, 찬 것, 들어오고 나가는 것, 쉽게 움직임, 붙잡는 것 등의 성질이 있다. 수행자는 주시와 관을 통하여 신속히 그리고 미세하게 그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

   4원소의 본성을 위와 같이 자세히 열거한 것을 몸 안에서 직접 체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간접적인 방법, 다시 말하면 본질적 특성을 말로 반복하고 그 본성을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접근이 가능하다. 통상적으로 개념의 영역에서 이러한 이해를 할 수 있다. 136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4대 원소에 대한 이해는 설명된 것과 같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본질에 대한 이해다. 본질은 개념의 영역과 논리적 생각을 넘어서서 존재한다.

   몸에 자세에 대한 명상도 효과적으로 계발하는 데에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수행자는 가는 것, 서 있는 것, 앉아 있는 것, 누워 있는 것, 구부리는 것, 펴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씹는 것, 맛보는 것, 배설하는 것, 오줌누는 것 등에 대한 마음집중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자세는 동적이다. 그리고 연속해서 변화하는 것도 명백하다. 모든 자세를 있는 그대로 놓치지 않고 관찰할 수 있을 때 마음은 잘 정화되어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자세를 명상의 주대상으로 할 것인지 보조적인 대상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보조적인 대상은 주대상을 잠시 보류하는 동안 마음의 집중을 이완하려고 할 때 취해진다.

   여기 언급된 모든 방법은 전통적인 불교 명상법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집중을 위한 40가지 주제 가운데에서, 혹은 <<대념처경>>에서, 혹은 대부분은 양쪽 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중 어느 것에서도 수행자는 집중력을 얻을 수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더 많이, 어떤 곳에서는 더 작게 얻을 수 있다.

수행자는 필요한 선정력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대상들을 바르게 채택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까지 이끌어줄 명상법을 선택하여 수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궁극의 목표는 위빠사나 지혜인 자유(해탈)이다.

   정신적 계발의 수련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사마타 즉 선정 수련과 위빠사나 즉 지혜 수련이다. 사마타는 고요와 평온으로 이끌고 위빠사나는 현상의 본성을 파악하는 직관적인 지혜와 해탈로 이끈다. 137

   사마타는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가 만든 개념화의 세계이고 위빠사나는 본질 그 자체로서의 세계이다. 사마타로 이끄는 명상의 대상은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심상화(心像化)된 색원반은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상념으로 만든 것이다. 부정관도 우리들 자신 내부에서 우리들이 키워온 것이다. 흙의 안정성, 물의 응집성, 불의 성숙성, 공기의 유통성은 우리들이 그러한 것들을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 개념화한 4대 원소의 특성들이다. 실제 걸을 때는 걷는다는 생각, 구부릴 때는 구부린다는 생각, 닿을 때는 닿은다는 생각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자세인 실제성에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만든 관념들이다. 137^8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만드는 모든 영역은 사마타로 유도한다. 즉 우리들이 만드는 모든 아이디어, 상상, 생각, 개념들은 사마타로 유도한다. 사마타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마타의 수련도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수련이다. 권장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선정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선정의 결실을 원하는 사람은 선정을 수련해도 좋다. 그러나 지혜의 결실을 원하는 사람은 지혜를 수련해야 한다. 선정수련을 하고 난 다음이든 아니면 지혜의 길로 직접 인도하는 고속도로로 안내하는 수행법을 바로 채택하든 어쨌든 언젠가는 지혜 수련을 해야 한다.

   지금 현재 선정 수련을 하고 나중에 위빠사나 수련으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바로 위빠사나 수련을 택하든가 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선택에 달렸다. 위빠사나 수행자로서의 본인은 수행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다. 순룬 사야도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 138

   이러한 의문들이 일어날 것이다. 즉 만약 4대 원소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개념을 만든다면, 만약 걷는 것, 구부리는 것, 닿은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생각을 만든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의 마음이 항상 그렇듯이 상상이나 개념을 만들기 쉽다면, 우리들이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개념이나 관념의 장갑을 끼고 현상의 흐름을 다루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있다.^ 만약 개념이나 생각의 장갑을 끼고 현상 과정들을 처리하는 것이라면 그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자유로 가는 길은 있을 수 없고 해탈의 지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상 과정 그 자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빠사나가 있고 직관적인 해탈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138^9

   호흡의 출입을 알아차리는 수련을 예로 들어보자. 호흡법은 누구에게나 맞는 수행법이라 한다. 만약 호흡에 마음집중을 수련한다면 평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 악업과 부도덕한 상태를 극복하게 된다. 몸과 마음은 무서워서 떨지 않을 것이다. 그는 4념처와 7각지를 수련하고 지혜와 해탈을 실현한다. 호흡에 마음집중하는 수련은 붓다가 수련한 것이다. 더구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이 수련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른 추가적인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한 것이다.

   이 수련은 단순한 집중의 방법(사마타)으로 수련될 수도 있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위빠사나) 수행할 수도 있다.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호흡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코끝이나 윗입술 혹은 코 근처 다른 곳에 부딪힐 것이다. 마음을 접촉 부위에 집중하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세어라. 이것이 한 방법이다. 다시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마음을 호흡이 닿는 부분에 집중하고 짧으면 짧다고 길면 길다고 알아차려라. 이것이 두번째 방법이다. 다시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마음을 호흡이 신체와 닿는 부분에 집중하라. 그리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처음, 중간, 끝부분을 모두 느껴라.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은 호흡을 배 끝까지 따라가거나 그 이상 따라갈 필요는 없다. 집중의 초점은 호흡과 신체의 접촉 부분에 고정시켜라. 그것은 톱과 같다. 139

   톱의 이빨은 항상 나무와 접촉되는 한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그러나 나무에 접촉되는 부분만으로 톱의 전체 길이를 인지한다. 왜냐하면 톱의 전체 길이가 그 접촉 부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번째 방법이다. 이 모든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수행자는 호흡의 출입을 다른 곳이 아닌^ 접촉 부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39^140

  이것은 네번째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마시고 내쉬라. 호흡 접촉 부위에 마음을 고정시켜라. 부딪히는 감촉을 알아차려라. 숫자를 세지 마라. 길이의 정도를 알려고 하지 마라.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따라가지 마라.

  호흡 집중에 대한 네 가지 방법 중에서 처음 세 가지는 단순한 집중형태의 수련이다. 반면 네번째는 지혜 수련이다. 첫번째 방법은 숫자를 센다. 숫자도 개념이다. 두번째 방법은 호흡의 형태를 아는 것이다. 모양도 상상이다. 세번째 방법은 호흡의 드나듬을 주시한다. 관념으로 아는 것이다. 개념과 이미지와 관념은 우리가 보는 세계에 속하므로 사마타에 관련된다. 촉감만을 순수하게 관찰하는 네번째 방법만이 지혜 명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수련도 선정과 결합될 수 있다. 만약 있는 그대로의 실제 감각을 알아차리지 않거나 마음집중으로 이러한 알아차림을 지켜나가지 않고, 개념이나 관념을 만드는 옛 습관으로 집중한다면 그 순간 위빠사나 대신에 사마타를 수련하게 된다.

   관념으로 아는 것은 실제 현상의 변화 과정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고 추리하는 마음을 개입함으로써 현상들을 다시 관념화하는 과거로 빠져들기 쉽다.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 과정을 즉각 포착하기 위해 수행자는 오로지 알아차림만 필요로 한다. 이것을 실행하기는 어렵지 않다. 첫번째 필요조건은 알아차림이다. 닿음이나 감각이나 심리 현상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하고 지켜 나아가라.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하면 생각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생각은 방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념, 상상 혹은 관념을 형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알아차린다. 즉, 생각으로 왜곡됨이 없이 그 과정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이 참다운 지혜 수련이다. 140

   사념은 항상 방해하려고 한다. 개념과 상상은 바로 문턱 너머에 서서 마음집중을 최소한으로 약화시키려고 대기하고 있다. 현상과정을 즉각 포^착하여 현상에 마음 집중하는 유일한 방법은 빈틈없이 물러나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있다. 이것이 순룬 사야도가 좌우명으로 말하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빈틈없이 용맹스럽게 마음집중하라는 것이다. 140^141

   그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불퇴전(不退轉)’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는 수행자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느슨하게 앉아서 마음이 풀려 한가하게 명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사려깊고 동정적으로 되기 쉽다. 실제로 수행하기보다는 수행되어지는 것에 더 많이 생각하고 숙고한다는 의미에서 사려가 깊다는 것이다. 동정적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동정한 나머지 용맹스럽게 노력하려고도 하지 않고 고통에 맞서 대항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수행자는 그 자신에 대해 대단한 동정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생각을 내적으로 향하여 자신을 관찰하기보다는 생각을 자신으로부터 이탈하여 표류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에게 생각을 향하게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수행자에게 굴욕적인 것이다.

   더욱더 강하게 호흡하라는 말을 들을 때 수행자는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경전상의 말들을 인용한다. 그는 저 유명한 <<청정도론>>으로부터 몇 줄을 인용하여 말한다.

수행자는 너무 과다하게 노력해서는 안된다. 만약 너무 지나치게 노력하면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141

   너무 과도하게 노력하는 수행자는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왜 불안정하게 되느냐? ‘닿음’ 즉 감각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수행자는 그의 노력에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명상의 대상으로부터 집중의 초점이 빗나간 채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 대상에 정확하게 집중하여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수행자는 우선 집중을 대상에 고정시키도록 해야 한다. 대상이 충분한 ‘알아차림’으로 고정되었을 때,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마음집중으로 보호했을 때 수행자는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수행했을 때 더해진 노력은 집중력을 이탈시켜 노력 자체로 향하게 하지 않고 그 대상에 더욱 고정시키도록 한다. 증가된 노력으로 보다 더 수준높은 마음의 집중을 계발할 수 있게 된다. 141^2

   위에 인용된 <<청정도론>>의 완전한 원문은 아래와 같다.

수행자는 마음집중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마음을 산만하게 해서는 안된다. 너무 지나치게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느슨해지면 정체되거나 무기에 빠진다. 너무 과도하게 노력하면 불안정하게 된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마음집중과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노력이 충분한 정도인가? 이것을 말한 사람은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생각한다.

   “자신 스스로가 충분한 양보다 많다는 것을 알 때까지 얼마나 충분한 양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만큼의 양이 충분한가의 척도는 붓다의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다. 즉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 비구의 질문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머리수건이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면 그 불을 끄기 위해 간절히 원하고 전심전력으로 목숨바쳐 노력할 것이다. 그와 같이 모든 악과 나쁜 상태를 그치기 위해서 간절히 원하고 주의깊게 전심전력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붓다는 얼머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또한 수행자에게는 느슨해지려는 성향이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순룬 사야도는 훈시했다.

   “불퇴전으로 전심전력하여 마음집중하라.” 142

   전심전력으로 마음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가동하는 것이^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념이나 거듭 생각함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불퇴전은 활기나 올바른 노력의 요소를 불러 일으킨다. 142-3

수행자의 또다른 하나의 나쁜 경향은 불안정이다. 그는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자리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 호흡을 하더라도 그만두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시작하고 다시 멈춘다. 이러한 것은 산란함의 표시이다.

   마음집중이 철저하게 확립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산만함을 피하여야 하고 들뜸은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순룬 사야도는 “가려워도 긁지 마라.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피로해도 쉬지 마라”고 말한다. 또 그는 가렵고, 쥐가 나거나 피로한 수행자에게 만약 호흡을 하고 있다면 더욱 열심히 호흡하라고 요구한다. 만약 감각을 관찰하고 있다면 감각에 마음을 더 깊이 침투시키라고 한다. 그리하여 마음집중을 보다 더 강도높게 계발하기 위하여, 더 많은 주의력을 가지고 수행하도록 한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일어나서 자세를 바꿈으로 해서 수행자는 기분을 전환하여 명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 앉은 수행자가 한시간 후에 일어나서 앉아 있는 감각에서 벗어나고, 그후 또 한시간 후에는 경행의 감각을 벗어나 다시 앉는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꾼다. 좌선에서는 어떠한 감각이 일어나더라도 사라질 때까지 앉은 자세에서 관찰해야 한다. 감각이나 닿은 곳의 알아차림에 주의를 집중시켜 고요히 앉아 있음으로써 마음집중의 요소를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수행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바른 마음집중이다. 143

   수행자의 세번째 행동상 특징이 있다. 단계나 낮은 장애요인들이 제거된 후에, 빛, 색깔, 기하학적인 무늬가 나타날 수 있다. 전에는 이와 같은 것이 결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마음 한편에서 황홀해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빛, 색깔, 무늬에 집착한다. 이런 두 가지 힘에 의하여 수행자는 그의 관심을 빛과 무늬에로 전환한다. 그러한 것들을 주시한다. 거기에 머문다. 명상의 대상에서 이처럼 멀어짐으로써 그의 본래의 목적을 포^기한다. 143^4

   일정한 수련의 기간이 경과된 후에 어느 정도 마음을 정화했을 때 수행자는 고요함과 경쾌함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마음의 평화를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수행의 최고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에 대한 이러한 평가 때문에 그리고 고요함이나 경쾌함 그 자체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수행자는 그곳에 주저앉아 고요함을 만끽한다. 그는 평화로운 감각에 침잠하기를 좋아하고 바른 길로 되돌아오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순룬 사야도는 이것을 미얀마에서 전해지고 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밍얀 강변은 1마일 넓이의 모래로 깔려 있다. 강에 다달은 여행가는 하오의 폭염 아래 발 밑에 있는 모래가 극도로 뜨겁다는 것을 안다. 도중에 나무 밑으로 간다. 잠시 그늘 아래서 쉬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휴식의 순간이 지났을 때 시원한 그늘에서 벗어나와 그의 머리 위와 발 아래에서 찌는 듯한 맹렬한 폭염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그 자신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늘 밑에서 계속해서 쉰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강을 건너가는 데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늘에서 다시 빠져나와 열기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수행상에서 발견하는 조그만 고요함과 경쾌함에 이끌리지 않도록 수행자에게 경고하는 이유이다.

   한때 이러한 경쾌함(평온)에 습관적으로 습관적으로 빠져 들어가 그곳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순룬 사야도는 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그가 잡은 조그만 도마뱀의 꼬리를 치켜 잡아들고 도마뱀 뒤를 쓰다듬고 있다.”

   분별력이 있는 수행자는 조그만 도마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144

   마음이 맑아지고 정화됨에 따라 수행자는 가끔씩 초감각적인 것을 많이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진리의 발견에서 오는 천안통과 천이통이 아니고 이러한 것에 다소 가까운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으로 수행자는 다른^ 사람이 못보는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그의 예언은 적중한다. 그는 일종의 무당이 된다. 위빠사나 수행자에게서 격하되어 무당이 된다. 시간이 점점 경과함에 따라 새로운 일에 대한 심란함이 점점 커져 분열되어지고 명상 수련을 집중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답이 점점 부정확하게 되고 차츰 단골손님들이 떠나가서 다시는 오지 않게 된다. 그 수행자는 수련을 도중하차한 셈이다. 144^5

   수행자는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수행을 강도 높게 해함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의 해탈은 여유있는 자세로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계속 마음을 가라앉혀 앉아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움직임이나 동작은 아무런 해가 없다고 잘못 생각한다. 아마도 수행의 초기에는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각 수행단계의 정상에서는 마음집중의 경미한 동요도 명상 구조를 끌어내릴 수 있고 그 명상 체계를 다시 착수해야 한다. 몸에 대한 문제도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미묘한 정신문제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잘못을 범할 수 있을까? 수행자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성향은 수행로상에서 처음 나타나는 진척 표시를 좀더 향상된 단계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불쾌한 감각은 갑자기 견딜 수 없게 된다. 잠시 동안 강렬한 고통스러운 감각이 있다. 다음 순간 그것은 사라져 없어진다. 그리고 그곳에는 깊은 고요함과 평온한 감각이 있다. 수행자는 종종 이것이 깨달음의 지혜를 나타내는 정신작용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는 깨달음의 네 단계(四果) 중에서 한 단계를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145

   이와 같은 수행단계의 오류는 명상을 지도하는 스승 자신이 그러한 문제에 철저히 정통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책에 있는 가르침이나 지시사항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다. 그러나 수행자는 깨달음의 단계 중 적어도 한두 단계를 성취한 것으로 등급을 매기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음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아무리^ 친절하고 간접적으로 그의 잘못을 알게해 주려는 명상 스승이 있어도 이를 싫어한다.

                                                                                                                                                                              145^6

  순룬 사야도는 수행자가 참으로 앞에 말한 단계를 성취했는지 안했는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판단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소견은 “만약 그렇다면, 그럴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진정한 성취는 다른 곳에서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드러내놓을 필요가 없다.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알 것이다.

   이런 자기 기만 형태에서 오는 주요한 위험성은 수행자가 범하는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그가 성취했다는 것에 만족하여 수행을 게을리 하고 실질적인 진척없이 수행로상에서 좌초되고 만다.

   수행자가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감각이다. 가벼운 경련, 열, 근육긴장은 수행자가 직시해서 얼마동안 그것에 대한 마음집중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뼈와 골수 내의 고통, 뜨거운 감각, 다리를 따라 일어나는 날카로운 고토은 몇분 내로 포기할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그는 변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경전상에서 인용구를 든다. 누가 명상의 주제로 고통스러운 감각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즐거운 감각으로 수행함으로써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단 말인가? 누가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된다고 말했는가? 자신을 굴욕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대답은 이렇다. 만약 수행자가 유쾌한 길로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선업을 가졌다면 또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지혜를 성취하는 수행자라면 그는 유쾌한 감각에서 수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우리들로서는 고통스러운 감각의 길로 갈 수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러한 선업을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146

   실제로는 후회할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감각도 궁극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적절한 명상의 대상이 된다. 보다 깊고 보다 강도높은 마음^집중을 확립하기 위하여 수행자가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감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사실을 수용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대상을 갖고 수행하라. 그는 고통스러운 감각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맹스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즐거운 감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즐거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에 침잠하고 즐거운 감각에 마음집중하려고 하지 않고 쾌감을 만끽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쾌감 속에 내재해 있던 탐욕과 욕망이 그를 덮칠 것이다. 수행자는 감각을 감각으로써 유지하지 못하고 감각으로 인하여 그는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쇠사슬로 가는 연쇄적인 욕망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146^7

   그것은 마치 강한 급류 속에 있는 수영선수에게 결승점에서 꽃다발을 잡으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다. 만약 급류와 함께 수영하면서 꽃을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놓친다면 그는 급류의 힘에 의하여 밑으로 밀려날 것이다. 만약 급류를 거슬러서 수영하면서 손을 뻗어 꽃을 잡으려다가 놓친다 하더라도 그는 아직도 꽃다발 밑에 놓여 있으므로 다시 한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시도해 볼 기회를 갖고 있다.

   급류를 따라서 함께 수영하는 사람은 즐거운 감각을 채택하는 수행자와 같다. 만약 즐거운 감각에 탐닉하여 마음집중을 할 수 없으면 그것에 집착함으로써 낙오된다. 급류를 거슬러 수영하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감각을 수영하는 수행자와 같다. 만약 불쾌한 감각의 경우 그 본질을 관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직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노력과 마음집중을 재정비할 수가 있다. 147

   즐거운 감각은 숨은 적과 같다. 방심하고 있는 수행자를 속인다. 불쾌한 감각은 눈에 띄는 적과 같다. 수행자는 그것을 알아채고 정확한 행동을 취하여 불쾌함 속에 내재되어 있는 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불쾌한 감각을 당연히 싫어하는 것과 마음집중을 확고하게 하려는 강렬한 노력 사이에서 수행자는 자신을 불쾌한 감각에 몰두시킬 수도 없고 꽁무니를 뺄 수도 없다. 불쾌한 감각 속에 머물면서 초연한 일념으로 그 감각을^ 관찰함으로써 완전히 자신을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불쾌한 감각은 방황하려는 마음을 확고하게 묶어둘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고통스러운 감각으로 인하여 수행자는 현상의 참 본성인 고(苦)를 즐거운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147^8

   고통스러운 감각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다. 불쾌한 감각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충분한 마음집중력과 강렬함을 불러 일으키는 테크닉들이 있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수행자를 아픈 부분과 불쾌한 감각을 동일시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마음집중이 충분히 확립되어 감각 속에 파고들어 아픔을 받는 ‘나’라는 인격의 관념과 동일시하는 것을 제거할 때에, 불쾌한 감각은 단지 불쾌한 감각만으로 되고 더이상 고통의 원천은 되지 않는다.

   명상의 궁극적 목적은 환상적인 관념의 ‘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불쾌한 감각과의 투쟁에서 몇번이고 거듭 반복해서 ‘나’라는 관념을 부수어 나가야만 한다. 고통이 일어난다고 해보자.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수행자는 그것에 마음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원인을 사실상 죽여야 한다. 완전히 숙달되어 마침내 원인 속에서 원인을 죽이고, 원인 내에서 원인을 종식시킬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서 수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끝없는 윤회의 사슬에서 또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결과를 다시는 초래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원인 속에서 원인을 죽이는 것이 깨달음이다. 거짓 관념인 ‘나’를 제거하는 능력의 특성 때문이다. 순룬 사야도는 말했다.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당신은 항상 윤회의 흐름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다.” 148

   불쾌한 감각은 수행자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일단 내부의 적을 극복하면 외적 고통의 근원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격렬한 수련을 한 후에는 수행자가 진정한 자유의 지혜를 누릴 순간이 온다. 이러한 순간들은 매우 드물게 온다. 이러한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몸에 대한 마음집중을 완벽하게 확립해야 한다.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 또한 완전히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불쾌한 감각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것을 뜻한다. 수행자가 그의 길을 가는 데 있어 고통의 감각은 최대의 장애물이다. 이것이 후퇴하는 곳이다.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행자는 불굴의 노력과, 단호함, 올바른 방법뿐만 아니라 강인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148^9

   이들 감각은 수행자가 다음 단계인 마음에 대한 마음집중을 확립하는 미묘한 과정을 다루는 데 필요한 충분한 선정력과 마음집중을 갖추게 한다. 마음[心]에 대한 마음집중이 충분하게 이루어졌을 때 수행자는 법에 대한 마음집중을 확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진리의 장엄한 순간이 온다. 만약 수행자가 마음집중의 원칙을 완전하게 확립하지 않는다면, 해탈의 지혜가 올 때 그는 수줍어서 도망갈 것이다. 그것을 붙잡는 데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차림의 네 측면(4념처)을 완성시키고 깨달음의 일곱 요소를 충분히 계발한다면 4념처의 완성과 7각지 계발의 순간 진정한 해탈의 지혜가 생긴다.

   불행하게도 불완전한 행동이 수행자의 특성이다. 용맹스럽게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금방 안절부절해지고, 빛이나 색깔 같은 것에 집착하고 고요한 곳에 안주하려 하고, 조그만 성공을 과장하려 하고, 부수적으로 얻는 노력을 오용하려 하고, 쉽게 의심하고, 불쾌한 감각을 두려워하고, 진정한 진리의 순간이 올 때는 수줍어하고 무서워한다. 이러한 수행자를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들이 그 표본이다.

   좋은 씨앗은 뿌리려고 하지 않고 명상의 이익만을 취하고 싶은 사람이 우리들이다. 투자는 하지 않고 대가만을 원하는 사람이 우리이다. 우리는 많은 노력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목표를 우리들 자신에게 말로만 원한다. 우리는 완전히 진실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어한다. 149

   그러면 그 목표는 우리들이 영원히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순룬 사야도가 지나간 길을 우리도 역시 갈 수 있다. 그의 지시를 성실하게 따르기만 하면 된다. 순룬 사야도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149^150

우리들은 용맹스럽게, 강도높게, 불퇴전의 노력으로 마음집중해야 한다. 피곤해도 쉬지 마라. 가려워도 긁지 마라. 쥐가 나도 움직이지 마라.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최대한으로 고요하게 해야 하고 끝까지 분투 노력해야 한다. 고통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다. 편안함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미망의 흐름 속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고통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감각 속에 파고든 사람만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회의를 버리고 더한층 용맹스러운 노력을 발휘해야 하고 마음집중을 중단하지 않고 빈틈없이 해야 한다. 우리들 자신을 정화하고 고와 슬픔을 극복하며 바른 길에 들어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하여 신심과 노력 그리고 알아차림을 잘 호지하라.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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