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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한바다님의 말씀이 잘 안들려요.” 라는 질문에 대해

한바다님이 말씀하셨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언어가 있다.

하나는 존재의 언어다.

또 하나는 행위의 언어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는 행위의 언어가 사용된다.

무언가를 하라는 언어이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가는 형태이고 행동지향적이다.

 

그런데존재의 언어는 해라/마라하는 언어가 아니다.

도가에서 쓰는 언어가 사실 존재의 언어이다.

이 존재의 언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로써

고도의 명상상태에서 쉽게 알아 들어지는 언어이다.

나는 주로 존재의 언어를 많이 쓴다.

내가 살고 있는 기반 자체가 존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세계는 의 세계인데 이 세계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경전, 성경 들이 나온 것이다.

붓다나 예수가 도달한 그 세계는 행위의 언어로 전달할 수가 없으나 언어로써 전달해야 하기에

존재의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행위의 세계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고 명상상태가 되었을 때 이해된다.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존재끼리 만나서 존재의 핵심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명상상태가 아니면 판단과 분별의 작용에 의해 존재에 도달하지 못하고 빗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빗나가는 걸 알아도 계속 말을 던진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 말이 회전해서 심층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세상에 흔하지 않고 드물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언어가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

붓다나 예수는 실제로 새로운 존재의 언어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을 보면 당대의 언어를 쓰기도 하지만 전혀 새로운 언어를 쓴다.

왜일까?

두뇌가 아닌 의식이 하는 말이므로 어려운 말이 아니라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잘 들리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인도에서는 우빠니샤드라고 한다.

우빠(옆에), (가까이), 사드(앉다)

옆에 앉아서 무얼 하는가? 존재를 듣는것이다.

 

중국에는 열자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지식이 많으니까 나불나불한다.

바깥에 있고 못 들어오게 한다.

시간이 지나서 고요해지면 조금씩 계단으로 올라오게 한다.

명상을 거쳐 공의 세계를 알 때 합석하게 해 준다.

 

불교에서도 있다.

부처님이 가섭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

사실 이건 동양적인 표현인데 (인도에선 생소하고)

가섭이 공의 세계를 알아듣는 것을 인정해 준 것이다.

가섭이 나중에 선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 이런 때문이다.

행위의 언어가 아닌 존재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이 그런 거다.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런 것을 의미한다.

 

우리 내면에서 존재하는 가장 심층, 그 자리에서 나오는 공의 소리가 있다.

수냐타라고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은총이라고도 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순간에 자아가 없어진다.

자아는 완전한 밝음이 아닌 부분적인 밝음이다. 자기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의 근원자리를 모르므로, 밑바닥에 불안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들은 어떻게 하면 자아 너머의 이 자리를 알려줄까

하는 마음으로 존재의 언어로 말을 하였고

현존하는 대부분의 경전과 성경은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언어를 잘 들으려면 생각이 멎어야 한다.

그래야 공의 세계가 그려진다.

존재의 언어는 어떤 일을 할까?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심장(하트)로 흘러 보낸다.

가끔은 머리(백회)로 흘러 보내기도 한다.

주로 나는 하트로 낸다.

여러분이 자기 안의 생각을 멈출 때 심장의 파장이 맞아 들어간다.

완전히 생각이 멎은 순간이 오면 에고가 하고 떨어져 나간다.

이게 마음이 만나지는 것이다.

그걸 스승이 보고 찍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영혼의 과학이다.

이것을 언어화하는 건 어렵다.

 

존재의 언어를 듣기 위해 붓다요가를 하는 거다.

붓다요가는 사실 몸운동이 아니다.

몸운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몸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요함, 생각이 멎어지는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일반 요가는 몸동작, 건강, 다이어트 등을 중심으로 하는데

붓다요가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서

마음이 점점 느슨해져서 존재의 세계로 가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완전히 이완되는 순간에 생각을 멈추고 깊이 음미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하다보면 졸릴 수가 있다.

그래서 졸음에 빠지는 걸 막아 주기 위해 동작을 계속 바꾸어 준다.

왜 졸릴까? 우리 몸 안에 독소가 많다. 그래서 몸의 일부가 해독을 위해 자고 있다.

붓다요가를 하다가 뇌파가 떨어지는 그 순간에 잠을 통과해 나가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의식이 완전히 이완된 상태로 들어가는 지점을 포착하면

공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 세계는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한 세계이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그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지만 현재 우리의 삶이 바깥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기에

자기 안에 있는 고요한 세계를 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존재의 세계에 맞닿아 충전하기 위해 여기 온 거다.

그 세계와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각성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언제라도 주파수를 맞출 수 있게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내 말이 잘 안 들리는 건 당연하다.

존재의 언어를 낼 때는 말이 안으로 감아 들어가듯 나간다.

내 존재의 중심에 닿아서 나가도록, 공의 기운이 담겨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모임에서 여러분은 좀 더 가까이 와라. 잘 들으려면.

 


profile

순명

August 27, 2013
*.20.180.189

이 귀중한 말씀을 창화님 아니면, 어쩔뻔!

모임에 참석한 저는 도대체 뭘 한거죠?

나불나불에다가 난청이 더해져서리, 첨 들어봐요.^^;;

껌딱지 접수~

 

창화님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아난도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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