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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탐구의 본질

조회 수 10448 추천 수 0 2010.02.04 12: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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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란 무엇일까?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또 많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수많은 일들을 해내는 자신이 무척 위대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자신이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 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모든 행위가 이 “나” 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 이 “나” 를 모르고 움직인다는 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사막 위에 궁전을 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라고 했을 때, 그것은 내가 가진 나에 대한 이미지·추억·그리고 여러 가지 경험이나·지식·인간관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나” 도 아니고, “영원한 나” 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 즉 “의식 위에 떠오른 영상(映像)” 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 놓고, 그것에 “동일시(同一視)” 를 하고선 우리는 그것을 “자신(自身)” 이라 믿는다. 즉 당신이 “나는 행복하다” , “나는 이것이 무섭다” .. 등등 나를 말할 때, 실은 “나의 이미지·그림자” 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고, 참된 의미에선 진정한 자신을 “망각(忘却)” 하고 있는 것이다.

“나” 를 말할 때 “나” 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의 모순(矛盾)” 이다. 이런 가짜 자기는 바로 “사고와 욕망이 만들어내는 개념일 뿐” 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 “허상(虛想)의 나” 에 동일시를 하고 그것을 고집할 때, 이웃과 분리되고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순간 순간 경험하게 된다. 그 속엔 사랑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허상의 나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삶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며, 그 변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이미지” 를 만들어 불변한 무엇인가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바로 “안전을 추구하는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안전한 것은 없으며, 안전을 추구하는 그 마음 속엔 “변화를 거부하는 두려움” 이 숨어 있다. 그 두려움을 감추어 두려는 욕망이 실은 불안을 더욱 고착(固着)시키며, 불안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불안을 강화시킨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거기에 남아 “불안을 100% 겪어 내는 일” 밖에 없다. 그 때 마음은 처음으로 고요해진다.

자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노력을 멈출 때만이 고요와 평화가 들어설 수 있으며, 그 때 그것은 사고가 만들어낸 창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그 곳에 있었던 이름 지을 수 없는 생명 본연의 모습이며, 그것을《실존(實存)》또는《참 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실존은 생명으로 살아 넘치며, 곧《자비(慈悲)의 강》이다. “나” 라는 것은 “마음 위의 한 생각” 이다.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믿는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한 생각이 바로 “나” 이다. 그 “나” 는 실존이 아니며, 단지 “마음이 창조한 관념(觀念)” 일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자아에 대한 바른 탐구》가 가장 중요하다. 자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바탕을 알았을 때, 우리의 삶은 실존이 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당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당신은 항상 불안하며, 당신이 불안을 피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항상 고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나” 를 바로 알아야 본질의 바탕 위에서 삶을 100% 로 향유(享有)하며, “우주의 풍요” 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 밖의 세계는 곧 “자비와 사랑이 살아 있는 세계” 이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인간이 지상에서 삶을 영위(營爲)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의 내면이 무한한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이다. 우리는《무한한 존재(存在)》이다. 인간의 내부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면, 그 곳에는 한계를 지을 수 없는《무한한 하늘》이 나타난다. 한계를 지을 수 없으니,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인간은 이런 상태를 직접 체험(體驗)할 수 있다. 당신이 이 길을 통해서 들어간다면, 당신은 스스로 무한한 존재임을 여실(如實)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우주는 “너” 와 “나” 가 사라지고, 과거와·현재·미래의 구분이 없어지는 세계이며, 또한 앞이니·뒤니·위니·아래니하는 공간적 구별도 존재할 수 없는 자리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체험한다면 모든 카르마(Karma)는 일시에 떨어지고, 당신은 전혀 다른 존재 빛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것은 곧《구원(救援)》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나” 가 멎을 때, “나” 가 없을 때, “나” 의 분열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때만 경험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나” 라는 생각은 들어오지 않으므로, “나” 라는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소멸(消滅)” 이다. “나” 에게 있어서 이것은《마지막 경험》이며, 또한《진정한 영혼의 탄생》이다. “나” 를 가지고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 가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생각의 차원” 을 벗어날 수 없다. 즉 스스로 생각이 만든 것을 다시 경험하는 “자화자찬(自畵自讚)의 미궁” 일 뿐이며, 속박(束縛)에서 자유롭지도 못하고, 새롭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리된 자아의 착각(錯覺)이 만들어낸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경험은 그런 생각의 경험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마지막 경험이야말로《인류가 가야할 마지막 목적지》이다.
그것이《진정한 생명》이며《우주적 삶의 서곡(序曲)》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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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프라기아

April 02, 2013

밑에서 8 번째줄 '경험할 없다' 에서 '수' 자가 빠졌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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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운영진

April 04, 2013

프라기아님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오타를 정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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