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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예술의 울림과 흡인력

수정 삭제 조회 수 1637 추천 수 0 2015.03.08 10:49:20
해공 *.96.226.240

        <공감: 예술의 울림과 흡인력>

 

  나는 자비심의 근원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공감이나 자비심의 근원은 두 사람 사이의 같은 고통의 울림이다. 자신의 고통을 통과하면 그 고통의 파장과 과정은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의 허공에 새겨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울림이 일어난다. 파장이 같은 두 개의 소리굽쇠가 한쪽이 울리면 다른 쪽이 같은 파장으로 울리는 것과 같다. 고통(passio-=suffering)을 겪어내는 데서 고통을 통과하는 정열(passion)의 에너지가 피어오르며, 고통을 통과하고 나면 자비심(compassion)과 공감(sympathy), 감정이입(empathy)의 힘이 생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지극히 물리학적인 과정이지 전혀 신비스럽거나 철학적인 과정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다.

  그 울림의 깊이, 즉 공명도는 두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같은 파장이며 그 고통을 얼마나 깊이 있게 겪어냈으며 얼마나 통과해냈는가에 달려있다. 여기서 고통은 주로 심리적인 고통, 즉 고뇌(dukkha)를 말한다. 초기 불교의 핵심어 중의 하나인 dukkha는 어원적으로 ‘나쁜, 불안정한’을 뜻하는 duḥ-와 ‘바퀴살’을 뜻하는 kha의 합성어이다. 나쁜 바큇살의 ‘불안정성, 흔들림, 혼란’이 고통 즉 dukkha이다. 예컨대 자전거를 타고 갈 때 탄 사람의 실수나 서투름, 바퀴 상태의 잘못 등으로 흔들리거나 쓰러질 때의 불안정성 같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허공에 붙인 잘못된 이미지와 필름(film)들로 가득차 있다. 이것들은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자전거가 가는 길과 자전거의 상태가 맞지 않아, 흔들리거나 불안정한 순간이 생긴다. 삶의 실제 상황과 어긋난 상태로 마음 속에 잠재해있던 잘못된 이미지나 스토리가, 속으로 하는 말이, 살아있는 현실의 충격을 받으며 감정의 파동을 타고 흘러나온다. 이때 깨어 있는 사람은 마음이 불편함을 느낀다. 중생의 감정에는 미묘하게 이런 불편함이 깔려 있다가 흘러나온다. 감정은 에너지의 흐름과 그 흐름 위에 떠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로, 속으로 하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감정의 고통 속에서 떠올라 흘러가는 이미지나 말에 빠지지 않고, 감정의 에너지와 파동을 그대로 겪어내면, 감정의 고통을 통과하게 된다. 고통을 통과하게 되면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 이 구멍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공명하는 공간이 된다. 고통을 통과하는 만큼 가슴의 구멍은 많아지고 가슴은 텅비게 된다. 늙은 아기(老子)는 이렇게 해서 가슴이 완전히 텅비고 온몸이 텅비게 된 사람이다. 그래서 늙은 아기는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진다.

  고통이 드러나는 것은, 현실의 충격을 받은 마음의 잘못된 관념과 감정이 무너져 내리고 흘러가서, 살아있는 현실의 대양으로 흡수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머리에 갇히지 않고, 가슴으로 감정이 나타나는 그대로 겪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불안, 부끄러움, 두려움, 슬픔,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일 때 특히 그렇다. 쉽게 말하지만 이 과정은 머리의 죽음이고 에고의 죽음이다. 처음 겪을 때는 엄청 무서운 과정이기도 하다. 현기증이 난다. 아찔하다. 절벽 끝에 손 하나로 매달려 있다가 그 손마저 놓는 것이다. 숙달되면 가벼운 농담처럼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이요, 음악이지만...

  예술은 이 고통을 만나서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투사하지 않고 고통을 겪고 표현해내는 과정이다. 상처를 받은 진주조개가 그 상처를 감내하고 겪여내면서 상처에 표현과 치유의 진주결을 한켜 한켜 쌓아가는 것이다.

  예술의 표현력은 세계 속에 있는 인간존재의 정서적인 상황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어 살아 있음의 빛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그 속에서 인간존재의 갈등과 투쟁과 상처와 치유의 흐름과 파동이 직관적인 진실파악[epiphany]으로 빛난다. 더블린의 어두운 뒷골목과 삶의 현실에서 삶의 실감을 파헤치고 스케치하며 epiphany를 드러내려고 한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상황을 발굴하는 것, 고요하고도 슬프면서도 사람다운 음악을 듣는 것, 인간존재 공통의 상처와 고통을 읽어내고 겪어내고 기록하는 것, 그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느끼고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나는 코울리지의 늙은 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를 이런 흡인력 있는 예술작품의 전범으로 좋아하지만, 코울리지의 친구였던 워즈워스에게서도 이런 고통의 음악을 본다.

 

..... For I have learned

왜냐하면 나는

To look on nature, not as in the hour

자연을 보는 것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제는

Of thoughtless youth; but hearing oftentimes

삶의 체험이 없는 어린 눈으로가 아니라, 고요한 가슴에 울려 퍼지는

The still, sad music of humanity,

슬프고도 사람다운 음악을 자주 들으면서 자연을 보는 것이다.

Nor harsh nor grating, though of ample power

그 음악은 이제 격하거나 귀에 거슬리지도 않고

To chasten and subdue.

가슴을 맑게 하고 감정을 녹아내리게 하는 풍성한 힘을 갖추고 있구나.

                                 Tintern Abbey(88-93)

                               「틴턴사원」 88-93행

                                            by William Wordsworth 윌리엄 워즈워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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