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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투사와 위빳사나 - 요가와 손오공

조회 수 2015 추천 수 0 2015.03.08 21:39:16
    <관념의 투사와 위빳사나 - 요가와 손오공>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하늘에선 늘 은빛 비가 쏟아지고 있다. 은빛의 비처럼 느껴지는 이것은 요가에서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렸을 때 느껴지는 에너지인데, 극동[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백회가 열렸다고 할 때 느껴지는 에너지이다. 백회의 정확한 위치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정수리에 은빛 비가 항상 쏟아지고 있다고 알면 된다. 갓 난 아기는 백회가 열려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은빛 비가 계속 정수리를 통해 몸으로 쏟아진다고 한다. 손오공은 머리에 테가 있는데,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손오공에게 끔찍한 두통이 생긴다. 정수리가 열려 은빛 비가 내려올 때, 손오공의 테가 있는 곳의 윗부분이 사라지고, 머리 뚜껑이 열린 듯이, 머리 윗부분의 테두리부터 사라지고, 이윽고 몸의 테두리가 사라진다.
 관념의 지도가 완성된 어른은 보통 이 정수리가 막혀있다. 하늘에서 무상으로 쏟아지는 은빛 비가 차단되는 것이다. 무엇이 차단하는가? 관념이 차단한다. 관념이란 개념이나 이미지를 말한다. 이미지가 정수리와 송과선-뇌하수체 사이를 덮어서 이 은빛 비가 몸 안에 무제한으로 쏟아지는 것을 막는다. 이 이미지의 차단이 없다면 몸은 텅비어 녹고 온몸은 테두리 없이 이 은빛비의 바다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역시 믿기지 않을 것이다. 체험해보면 간단한데... 머리로 아무리 투사해본들 알 수 있으리?
 머리의 작용이 관념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투사가 일어난다. 이때 투사되는 관념은 마치 옛날 극장에 있는 영사기의 필름과 같다. 머리는 영사기(映寫機)이고, 영사(映寫)에 사용되는 광원(光源)은 정수리에 쏟아지는 은빛 비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념의 투사 원리>
머리=영사기.
영사기의 광원=정수리에 쏟아지는 은빛 비.
필름=이미지/관념.
스크린[은막]=몸과 온 세계

 여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당해할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무슨 무협지냐? 서유기? 무슨 뜬 구름 잡는 얘기야?
 사실 뜬 구름 잡는 얘기다^^;; 손오공이 구름 타고 다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좀 더 나눌 수 있는 경험을 찾아보자.
 발이나 다리의 촉감을 느끼며 걸으려고 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바로 위빳사나의 경행(walking meditation)이다. 잠시 일어나서 서너 걸음이라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보라. 이 때 보통 발이나 다리의 이미지를 그려서 걸음을 파악하려 한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이렇게 생긴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있고, 앞으로 가고 있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고, 바닥에 닿아서 바닥이 딱딱하니 부드러운지 차가운지 따듯한지를 안다.
 이때 무엇이 아는가?
 머리가 안다.
 머리는 무엇으로 아는가?
 관념으로 안다.

 역시 모르겠죠?
 너 취했니? 야, 깬다 깨.. 머리 아퍼..
 조금만 참고 구체적인 경우를 통해 알아봅시다.

 발의 움직임을 느낄 경우를 보자. 이때 초보자는 발에서 발의 촉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머리로 발의 움직임을 알 때, 발의 이미지를 그려서 발이 발의 이미지라고 투사한다. 실제로 순간순간 생멸하는 발의 촉감이 아니라, 나는 여기 머리에 있는데, 이렇게 생긴 발이 몸의 저 밑에 있어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발의 지도(地圖)를 끝임없이 투사하여, 머리로 안다. (정수리에서 쏟아지는 은빛 비를 차단하여 그 빛을 광원으로 삼아 - 이 부분은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괄호친다) 발의 이미지를 실제 발이 있는 곳에 투사하여, 발의 순간순간 생멸하는 촉감이 아니라, 발의 이미지의 움직임을 실제 발의 움직임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머리가 몸을, 또는 머리가 세계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끊임없는 관념의 투사, 투사, 투사.. 그에 따르는 탐진지[탐貪瞋癡=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 고뇌.. 개뿔도 없는 것에 대한 망상, 또 망상.. 관념 지도의 고착화, 또 고착화...(은빛 비의 차단, 또 차단...) 번뇌, 두통, 고뇌, 가슴앓이...
 관념의 투사가 머리의 테가 있는 곳 안에서 일어나자 손오공은 고뇌하는 것이다.

 위빳사나로 걸으며, 발에서 발을 느낄 때, 이 투사가 사라진다. 단계적으로 다음과 같이 일어날 수 있다.

 1. 움직이는 발의 형색[形色=모습과 색깔]이 명확히 보이며 발의 움직임이 명확히 보인다. 이것은 사실은 발의 이미지를 머리로 명확히 투사하는 것이다. 일단 주된 목표점을 발로 명확히 잡았으므로 이것이 위빳사나로 발전할 수도 있고, 사마타로 고정될 수도 있다.
 2. 움직이는 발의 형색이 사라지고, 발의 테두리만 남아서 그 테두리 안의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점차 의식은 발을 향해 육박한다. 의식은 머리와 발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때때로 가슴으로 발을 느낀다. (몸은 물과 같이 유동적으로 된다.)
 3. 정수리의 긴장이 완전히 풀리며, 의식이 머리에 있지 않고 움직이는 발에 있게 되면서, 발의 이미지가 아닌, 발의 순간순간 명멸하는 촉감을 발에서 바로 느낀다. 이때 몸의 관념 지도로서의 발은 사라지므로, 마치 ‘발’이 사라진 듯이, ‘몸’이 사라진 듯이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이 발에서 발을 느끼는 것이다. (몸은 공기와 같이, 바람과 같이, 움직이고 멈춘다.) 기적 같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관념의 지도가 고착되기 전의 어린 시절에는 거의 늘 일어났던 일이다. 아마도 예전의 어떤 선사(禪師)가 이때 “내가 걷다니, 내가 물을 긷다니, 내가 앉다니.. 이 무슨 기적인가?”라고 했을 것이다. 사실은 ‘내’가 없는데 걸음이 명멸하고, ‘내’가 없는데 물을 길음이 일어나고, ‘내’가 없는데 앉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점 이미지 없이, 걸을 때 걷고, 앉을 때 앉고, 물을 길을 때 물을 긷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마침내 손오공의 테가 사라졌다. 온몸은 테두리 없이 형체를 잃고 은빛 바다 속을 걸어가고 있다.

 걷기를 다리의 움직임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때 발과 같은 원리와 단계가 적용될 수 있다. 호흡에 따른 몸의 움직임을 코나 배로 느낄 때도 마찬가지...
 은빛 바다는 에너지가 활동적일 때 느껴지는 것이다. 에너지가 휴식기에는 빛 없는 감감한 허공 속인 듯 느껴질 때도 있다. 이때도 놀라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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