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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이야기와 느낌의 바다

조회 수 2151 추천 수 0 2015.03.08 21:51:19

<관념의 이야기와 느낌의 바다>


  1999년 7월 27일 수요일 늦은 오후에 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먼 길을 가고 있었다. 전철과 버스로 돌아 돌아 서울에서 경기도의 작은 아버지 집을 가야 했다. 좀 피로한 일이었다. 전철에서 내리고 버스를 탔다. 작은 아버지께 들었던 대로 내릴 정류장에 대해서 버스 기사에게 얘기했다. 버스 기사는 내가 말한 곳에 내려다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는 어딘지를 몰랐다. 길을 잃은 것이다. 화가 났다. 처음에는 떠나버린 버스 기사에게 화를 냈다. 왜 이따위 곳에 잘못 내려놓아서 나를 고생시키나.. 그러다 가만히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니 이건 버스 기사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었다. 내가 기사에게 설명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관념적으로 논리적으로 명확히 나의 잘못을 이해했음에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인 명확한 이해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해결하진 못했던 것이다.
  문득 내가 여전히 머리로 스토리를 만들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속으로 끊임없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속으로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을 뿐임이 순간적으로 보이자, 속으로 하는 말이 뚝 떨어지며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느낌의 바다 속에 떠 있음을 알았다. 스토리와 섞여 있던 분노의 에너지는, 스토리가 사라지자 자비(慈悲)가 되었다. 나는 감성의 바다, 자비(compassion)의 바다 속에 물고기처럼 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 전체가 에너지의 바다, 느낌의 바다였다. 가슴의 느낌과 교감 속에서 주위 상황 전체가 의식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곳에 있는 고층 아파트 빌딩들과 주변 풍경 전체가 느껴졌다 - 아마 분당이었던 것 같다. 생각을 통해 상황의 일면이나 한 조각만 보는 게 아니라, 느껴주는 알아차림 속에서 상황전체가 보이자,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판이 눈에 뜨였다. 잘 도착해서 제사를 마쳤다.


====미주현대불교의 댓글을 첨부합니다.

*** 08:27 new

잘 보았습니다.
논리적 이해가, 치미는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다.ㅡ 제가 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은 속으로,,,부분을 저도 봐야겠네요...그 느낌의 바다 경험이 궁금합니다...()*.*
해공 08:39 new         
평소에 심장과 심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반응을 느끼는 데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잘 안되면 육체적인 심장의 반응이나 움직임이라도 느끼다 보면, 점차 섬세한 감정에 대한 반응까지 느낄 수 있게 되지요. 머리와, 입, 턱, 목, 어깨의 긴장을 풀고 미소 짓듯이 심장을 느끼면 더 잘 되지요. 불상이나 반가사유상의 표정은 이런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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