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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의 직지인심(直指人心)

조회 수 2283 추천 수 0 2015.03.08 21:54:08
 <선(禪)의 직지인심(直指人心)>
daum 까페 미주현대불교 Re:간화선! 참 이해가 어렵습니다.| ··· 불교 토 론 방  
 http://cafe.daum.net/mobuddhism/ICuS/3179 에 올린 댓글입니다. 올린 글에서 한자 등을 보충하였고 띄어쓰기 등을 바로잡았습니다.
해공15.02.19. 18:55
늦게 몇 마디 시간이 나서 올려봅니다.
제가 이해한 선은 관념적 앎을 넘어선 어떤 것을 가리키려 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니까야-아비담마의 전통을 따라 그것을 빠라맛타(paramattha)라고 부릅니다. 빠라맛타는 관념[빤냣띠]을 거쳐서 알 수 없습니다. <관념이 드러나면 빠라맛타가 가려진다. 빠라맛타가 드러나면 관념이 사라진다.> 이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대전제가 되는 사실인데, 제가 이해한 위빳사나와 선의 길은 관념을 넘어선 경지에선 같을 수 있어도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차이가 있습니다.
cf) 빠라맛타란 나타나 있는 그대로[감각되거나 알아차려지는 그대로]의 오온과 닙바나[열반]인데, 나타나 있는 그대로에 대해선 <6. 절대적 진리(빠라마타)에 관하여 (우 소다나 사야도>( http://borisu.or.kr/bbs/board.php?bo_table=scent_02&wr_id=986&sfl=&stx=&sst=wr_datetime&sod=asc&sop=and&page=65)참조
해공15.02.19. 19:00
선은 관념화되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관념화된 것이 논리적 개념적 지도로 보면 정답이라도 선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관념을 넘어선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달마대사의 예를 들어볼까요?
해공15.02.19. 19:05
달마 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르셨다."너희들이 이제까지 정진(精進)하여 증득(證得)한 바를 각자 말해 보아라."
 ==인용문 출처 http://www.seon.or.kr/work/mac/data/28dharma.htm
 해공15.02.19. 19:09
아시는 내용이라고 보고 마지막 두 답변만 비교해보죠.=======도육(道育) 스님은,"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고 오음(五陰)이 본래 있지 아니하니, 한 법도 마음에 둘 것이 없습니다.""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마지막으로 혜가(慧可)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그러자 달마 대사께서,"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하시고, 심인법(心印法)을 혜가 스님에게 부촉(付囑)하셨다.
 해공15.02.19. 19:20
도육 스님의 답변이 개념적 논리적으로는 틀린 게 아닙니다. 수행을 해보니 오온이 관념적으로 붙들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다. 근데 뭘 말하라는 거냐?그러나 여전히 설명적으로 말하고 있고 관념이 없는 상태를 관념화하고 있습니다. 제 언어로 말하자면 빠라맛타를 직지(直指)하는 것이 아니라 빠라맛타를 열심히 빤냣띠로 만들고 있고 관념의 지도에 갇혀 있습니다.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교리적 이해로는 그 정도면 최상급이다. 그러나 너는 뼈다귀를 핥고 있는 개이고, 진흙덩이를 던지면 그걸 쫓아가는 강아지구나.
 해공15.02.19. 19:34
혜가는 달랐습니다. 빠라맛타가 일상이 된 그에게는, 말하라는 스승이 말이 어디가 잘못되었고, 잘못되었지만 말할 수 밖에 없는 스승의 상황이 아무런 관념의 여과 없이 그대로 느껴졌고, 관념으로 말하는 것의 함정이 명명백백하게 알아차려졌지요.그래서 혜가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입으로 하는 말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혜가는 말없이 인사하며 직지(直指)했지요.스승님, 와카능교[왜 그러세요], 정신 차리소, 마.달마의 눈엔 진흙[빤냣띠]을 던지자 그 던진 자를 물어버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혜가가 명확히 보였습니다.네가 진흙을 던지는 놈을 물어버릴 줄 아는 호랑이구나. 뒷일을 네게 맡긴다.
 해공15.02.19. 20:27
교학적으로 명확한 지도를 그리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수행의 시작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선의 시작은 비유하자면 팔만대장경을 다 명확히 해석하고 정리해내도 내 것이 아니고 나의 깨달음이 아니고 내 고뇌가 해소가 안 된다는 기막힌 현실과 고뇌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도 수행이라는 거 한번 해보자. 우리도 한 걸음이라도 우리 몸으로 직접 걸어보자. 우리끼리 밭 갈고 우리끼리 노동해가면서라도 관념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을 쳐보자. 이것이 북방 대승교학을 넘어선 위대한 첫 걸음이었죠.
 해공15.02.19. 21:42
관념의 지도에 갇히는 게 아니라 관념 지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시작된 겁니다. 교학의 지도를 그려보고 한계를 느끼고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겠고, 교학을 배운 게 거의 없거나 아예 없지만 삶의 고뇌가 너무 뼈저리게 다가와 시작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 수행의 여파인지 무언가 고향 소식 같은 느낌 때문에 시작한 사람도 있겠지요.
 해공15.02.19. 21:57
제가 이해한 바로는 관념을 넘어서는 것, 이것이 진정한 불교 수행의 시작입니다. 그 이전은 준비 운동일 수는 있어도 수행은 아닙니다. 그 준비 운동은 교학을 통해 관념적으로 이해해보다가 한계가 느껴진 것일 수도 있고, 삶의 고뇌가 절실히 다가온 것일 수도 있겠고, 사마타 선정을 닦다가 앉을 때는 고뇌가 없어 보이는데 일어서서 일상으로 돌아오니 탐진치[貪瞋癡]가 여전하여 괴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해공15.02.19. 22:03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 인연에 따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바라는 바를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죠. 선은 선의 길을 가고, 교학은 교학의 길을 가고, 위빳사나는 위빳사나 길을 가고, 금강승은 금강승의 길을 갈 뿐입니다.
 해공15.02.19. 22:13
그런데 제가 이해한 바로는, 선도 위빳사나도 금강승도 다, 관념을 넘어서는 것, 그것을 진정한 수행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아는 바로는, 선은 오직 관념을 벗어나는 것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지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길이고, 그 길은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왜 그렇게 가는지는 이해할만합니다. 남은 것은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느냐겠지요^^.
 해공15.02.19. 22:21
일하면서 글을 올리다보니 드문드문 게릴라 식 글이 된 듯하여 죄송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뇌를 벗어날 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구요^^;; 저도 저의 현실과 고뇌를 알아차리느라 바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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