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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죽음

조회 수 5480 추천 수 0 2009.10.26 20:15:40

몇 달전 친한 선배 한 명이 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마흔넷의 한창 나이에 들려온 비보는 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였다.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함께 운영하였었는데, 내가 학원을 나온 후로 몇 년간 고전하다 최근 분점을 내는 등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터이라 그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성공하기 위해서 휴일도 없이 몇 년을 학원에 매진하며 스트레스를 감당해온 선배의 삶이 너무도 허망했다.

죽기 전 병문안을 가서 만난 선배의 모습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의 모습이었다. 간의 70%를 잘라냈다는 선배는 몇 주 간 음식도 거의 먹지 못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숨을 쉬는 것 조차 괴로워 보였다. 희미한 목소리로 그 선배는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후회 섞인 말을 남겼다. 친구도 보고 싶고, 나와 함께 지리산에 가서 명상도 하고 싶었는데, 너무 한스럽다는 거였다.

장남으로 태어나 착한 아이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 선배는 한 번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한 채 한스러운 인생을 그렇게 허망하게 마쳤다.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물질적 성공을 택했던 선배는 지금 여기의 행복한 삶을 희생하고 최고와 최선을 강조하며 치열한 학원가의 경쟁속으로 자기를 던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과 담배에 의존했던 선배의 습관화된 일상이 그의 육체를 한계까지 몰고 간 것이었다.  

만약 이 선배가 진작에 자기 가슴속의 상처들을 자각하고 치유할 수 있었다면, 명상과 사랑의 눈뜸을 통해 허망한 욕심을 비워내고 자기 삶을 용서할 수 있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면,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 것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다면, 그 속에서 진성한 삶의 기쁨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우리 모두는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와 가정 환경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사랑을 받은 경험을 하지 못한다. 자기 의식이 생기면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부모의 기대에 맞추는 역할을 선택하거나 반항적이 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끌어보려는 역할을 선택하게 된다. 두 가지 모두는 스스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 받기에는 부족하다는 자기 신념을 무의식에서 만들어 강화시킨다. 그래서 사랑을 받기 위한 본능적 책략으로 우리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가짜의 자기 즉 가면을 쓰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고 가면 속에서 살아간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삶 속에서의 생생한 기쁨과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무감각해지거나 그러한 기쁨을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쾌락을 전해주는 다양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물질화되고 자본화된 사회는 개인의 그러한 충동을 충동질하며 스스로의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게 장막을 치며 오히려 그러한 중독을 부추기는 듯 하다.

선배의 죽음은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본원적 질문들을 새롭게 던져주었다.



profile

[레벨:4]moonlake

October 31, 2009
*.225.71.186

깊어지는 가을과 더불어
가슴이 절절해지는 내용이군요.

귀중한 말씀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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