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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와 영적각성

조회 수 13151 추천 수 0 2010.12.11 15:28:33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중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성을 갖고 전달해주는 것이다. 언론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언론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개입해 특정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이나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마치 사실인양 보도하는 태도는 공정한 사회의 크나큰 적이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하다보니 자본의 논리가 인간성의 논리를 우선해버린 것 같다. 양심이 살아있지 못한 사회는 희망이 없다. 과거 일제시대에 물리적인 자유는 빼앗겼지만 민족의 정신은 살아있었다. 그러기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온다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육체적인 자유는 있으나 정신의 자유와 마음의 혼은 자본주의의 사치와 향락과 편리와 화려함에 빼앗겨버린 듯 하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마음을 어디에 기대야할지 막막하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보편적 가치관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이고 생활하게 된다면, 인간성을 지키고, 양심적이며, 순수하고 장기적인 가치를 위해 눈에 보이는 이익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극단적 이익을 위해, 파트너를 이용하고, 신뢰를 저버리고, 배신하고, 거짓말을 하고, 허위선전을 하면서 자기만 승리하는 사람들을 추앙하게 된다. 이런 사회가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승자독식사회가 자본의 논리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으며, 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 승리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겠는가? 지금은 이등도 죽고, 오직 일등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극단적 경쟁논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외롭고 참담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러한 논리를 마치 사실인양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다 보니, 대기업들이 동네 구멍가게나 슈퍼에서 가져가는 생계형 사업에도 염치없이 뛰어들어, 경쟁의 논리만을 강조하며, 서민들의 생존수단을 뺏어가면서도 당당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이런 사회 흐름과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키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분노를 사회적으로 표출하려는 시도를 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마저 언론에 의해서 곡해되고,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며, 시간에 질질 끌려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고, 자신들의 순수했던 분노와 정의감은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소멸되어야할 사치스런 감정으로 전소되고 마는 현실에서 개인들은 무력감을 경험한다.

 

심리학에 보면 학습된 무기력이란 말이 있다. 불편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만 반복적으로 그 시도가 좌절될 경우, 우리는 그 환경을 벗어날 시도조차 하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불편함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인다는 이론이다. 동물실험을 통해 증명된 이 이론은 지금 우리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듯 하다. 나 개인의 양심과 공정함의 기준으로 바라봤을 때,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고 고쳐져야 하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죄송스러워해야 할 텐데,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의 세상은 온통 거꾸로만 간다.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고소하고,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자지만 맞은 놈은 또 다른 보복이 두려워 노심초사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물하지만, 누구하나 똥 묻은 개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겨 묻은 개에게 아귀처럼 몰려들어 온갖 오물을 뒤집어 씌우고, 희생양을 삼으며 조롱 한다. 마치 개인의 에고가 자신의 죄의식을 외부에 투사하여 외부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투쟁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헛되이 입증하려는 가녀린 시도처럼,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이고 악랄한 방식으로 악의 정당성을 구축하려고 하는 듯하다.

 

이런 불합리함을 경험하며 이를 고치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산될 때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경험된 무기력을 학습하여 그 상태에서 자기 삶과 세상을 투사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집단적으로 무기력함을 경험한다면 그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짓밟히고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 마저 무시당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시민적 권리를 주장하는 당연한 노력들이 무의미하게 받아들여지며 자기들의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만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며 미래를 불안해하며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그만 안식처에서 위안을 얻는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체면상, 양심상, 혹은 주의의 눈이 두려워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은밀히 진행하던 자기 욕망의 추구를 이제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진행 하고 있다. 욕망의 추구 그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 만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을 자기 욕망의 제물로 삼아버리는 원시적인 욕망추구의 형태는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너무도 많은 생명들이 제물로 희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회는 건전한 가치관, 즉, 정직, 공정함, 정의로움, 사랑, 배려, 신뢰등을 강조한다. 그것들이 무너진다면 자신들의 지위와 안녕을 지지하던 통치기반도 결국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지키기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체성을 벗어나 전체적 의식으로 개인의 의식이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눈 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 차원의 상호이해관계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가 내 존재에게 훨씬 큰 이익과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습은 우리 마음의 상태가 외부로 투영된 것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도 내 안에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내 안에 자기와의 싸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속의 전쟁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지구별의 미래를 걱정했다. 내 안의 분노와 투쟁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불일치와 갈등을 스스로 멈추고, 마음이전의 본래 마음, 즉 무한대의 사랑을 깨달아 이것이 나의 몸을 통해 외부로 표현되는 상태가 창화력이다. 창화력은 창조력과 조화의 힘이 통합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개인과 사회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존재의 사랑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회예산안을 집권당의 무력적인 집단행동으로 단독 처리한 그 순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 가서 자랑스럽게 “민주주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안에서 부모가 이렇게 말과 행동이 다르게 아이를 훈육하는 것을 이중구속이라고 한다. 이중구속이 심하면 아이는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들어내지 못하며, 힘 있는 자의 눈치만 보고 맞추려는 자존감 낮은 사람으로 성장하게된다. 혹은 반앙심을 키우며 자신의 힘을 키워 결국 힘의 역전이 오는 순간 자기가 부모에게 받았던 방식그대로 부모에게 보복하려는 충동적 행동들을 보이게된다. 이 역시 내면에는 낮은 자존감에 상처받은 불만이 치유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병리적 현상이다. 더 심각한 것은 낮은 자존감은 내재화되어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에서 경험하는 일반적 대인관계, 결혼해서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에 마치 심리적 유전처럼 전이되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는데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의 현실, 특히 관계의 불화를 통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면 상대와 대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자기의 마음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안에 해결되지 않은 욕구와 상처들을 의식화하여 보다 전체적 차원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내 마음이 지어내는 착각에서 벗어나 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객관성을 갖고 주시할 수 있으며, 이 힘이 깊어질 때 물리적 차원을 넘어 영적 수준으로 삶을 바라보고 향유할 수 있는 마음이 계발되어진다.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만큼 그 것을 경험하는 우리의 내면도 더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나의 그림자가 의식으로 들어온다. 이것을 나의 공부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참담한 현실에 조그마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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