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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자존심 사이

조회 수 4683 추천 수 0 2014.02.18 14:34:57

 

36개월 된 예원이가 외할머니 집에서 놀다가 신문으로 거실을 심하게 어질러 놓았다. 할머니는 “누가 그랬어, 누가 그랬어~” 하시며 예원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려 드셨다.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예원이는 뜬금없이 진여를 끌어들였다. “난 안그랬는데, 예원이가 그런거 아냐?” 말려들지 않으려는 진여는 시침을 때며 예원이의 행동을 돌아보게 했다. “엄마가 그랬다니까! 엄마 혼나야 돼, 엄마 나뻐! 타임아웃이야!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일분간 혼자 방에 가두는 처벌)” 하며 오히려 진여를 나무라는 거였다. 그리고는 엄마를 방에 혼자 가두고, 문을 닫은 다음 할머니 방에서 한 시간 동안 엄마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예솔이랑 논 일이 있었다.

 

다음날 진여는 나에게 지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거였다.

 

우리는 한동안 예원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리고 순간 예원이의 마음이 가슴에 다가왔다.

 

예원이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었다. 자기는 별 뜻 없이, 잘못이란 인식 없이 놀았던 것인데 그것을 할머니가 갑자기 지적하자, 죄의식과 억울함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상황을 모면하려고 엄마 핑계를 댄 것인데, 엄마는 그것을 받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거짓말 하는 아이를 보고 버릇을 고쳐야 되겠다는 의도로 아이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되물은 것이었다. 예원이는 순간 갈등에 빠졌다. 자기 행동을 인정하자니 이미 엎질러진 물, 엄마 핑계를 거짓말로 대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되돌리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 밑에는 거짓말 했다는 양심이 걸렸다. 그러나 이 순간은 양심보단 자존심이 더 강했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쬐끄만게 무슨 자존심! 지가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지! 한 번 봐주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어 더 나빠질지도 몰라! 확실하게 버릇을 고쳐줘야지! 그런데 한 발 뒤로 물러서 자신을 돌아보면, 그 순간 자기의 잘못을 돌이키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양심에 순종하여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성인들도 순간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곤 한다. 누가 면전에서 그 잘못을 바로 지적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발뺌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순간 당황에서 뇌는 판단력을 잃고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순간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공개적으로 반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격적인 수양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닐까? 성인도 하기 힘든 것을 이제 막 36개월이 된 아이에게 요구했던 것이었다.

 

대화중에 이런 깨달음에 이르자, 우리는 함께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다시 상황 속으로 돌아왔다. 그럼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진여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내 생각에 그 순간에는 엄마가 우산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닌 줄 알면서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이지. 그리고 상황이 진정되면 그때 물어보는 것이 어때? 아까 할머니가 누가 어질러놨냐고 물었을 때 예원이가 엄마가 그랬다고 해서, 엄마는 당황했었어, 엄마가 궁굼해서 그런데 그렇게 말한 이유을 알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때 추궁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의 생각이 그저 궁굼할 뿐이다) 이렇게 질문하고 대화하면 예원이도 자기 행동을 지혜롭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양심과 자존심은 때때로 대립될 수 있다. 그럴 때 도덕과 이상적 가치를 내세워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양심의 법을 따르도록 강요한다면 오히려 양심에 거부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양심적인 것과 자존심이 상하는 마음이 결합해서, 양심적인 것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과 가치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양심적이며 지혜로운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성이 충분히 자라날 때 까지 시행착오들을 허용해주며,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양육태도와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아이의 마음을 인내해 주고,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질문해주는 과정 이다. 그 속에서 아이의 행복이 자라난다.

 

 

 

 

 

 


profile

[레벨:5]법안

February 18, 2014
*.128.240.250

이런 면에서 제가 부족한 점이 많은데... 가족 내에서는 공감 능력이 훨씬 떨어집니다. 마침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일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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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일여

February 19, 2014
*.161.55.236

 가까운 사이일 수록 서로에 대해 안다는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이 작용해서 경청과 공감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원리를 이해하고, 마음공부를 통해 용서와 내려놓고 중심잡기를 잘 실행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매일 매일 실수하고 좌절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안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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