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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공든 탑

조회 수 4748 추천 수 0 2014.03.09 00:03:41

예솔이와 예원이는 책을 참 좋아한다.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갖고 탑 쌓는 놀이를 더 좋아한다. 내심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면 좋겠다 싶지만 그저 부모의 무상한 바램일 뿐이다. 어느 날 저녁, 예솔이가 책을 쌓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책꽃이로 더 많은 책을 가지러 돌아선 순간 애써 쌓은 책들이 무너져 버렸다.


“예솔아, 어떻하니 책이 무너졌네?”

“괜찮아 아빠, 다시 쌓으면 돼에~”


끝말을 약간 내리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예솔이의 말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아, 그렇치, 다시 쌓으면 되지~

그리고 예솔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너진 책들을 다시 쌓아올리며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무색하게, 우리는 살면서 공들인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들을 왕왕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사람에 대해 공들인 마음이 실망 혹은 배신으로 되돌아 올 때는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이 다짐 덕택에 우리는 사람과 관계에 대해 영리해 지기 시작했다. 손해를 안볼 수 있는 전략을 발달시키고, 더 나가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득을 볼 수 있는 처세에 달인이 되어간다. 

 

나이가 들면 의심이 많아진다고 한다. 사람을 많이 겪다보면 믿을 수 있는 경우보다 믿을 수 없는 경우를 더 많이 겪기 때문이리라. 초기에 믿고 배신의 쓰라림을 경험하는 것 보다,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자기 삶에 더 득이 된다는 것을 삶의 오랜 경험을 통해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마음공부는 더 영리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리한 생각을 내려놓고 미련함을 배우는 과정일 수 있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도 때론 필요하겠지만, 그 관점으로만 세상을 살려하다 보면, 세상이 믿을 사람이 점 점 더 없어지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자기 가족도 믿기 힘들어 진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웃기게도 가장 믿을 수 없는 놈은 자기 자신이란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나의 마음이란 것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구, 문제가 목구녕 바로 앞에 까지 다가와 시퍼런 칼날을 들이 댈 때는 그 문제 하나가 삶의 전부인양 싶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는 것이 마음의 습성아닌가? 그것을 잘 알 수 있다면 우리의 본성은 영리함 보다는 어리석음, 미련함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영리하면서 사랑이 충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한다. 그것이 집착이고, 그 마음에서 괴로움이 잉태된다.

 

변하는 것이 생리인데 마음의 이상은 변하지 않는 이미지에 고착되어 있다면, 필경 우리의 현실을 괴로움의 연속일 것이다. 기대와 현실의 갭에서 오는 부조화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해 질 수 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 혹은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이 타인에 대해서도 엄격해지고, 그 결과 관용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사랑을 잃어버리는 일도 흔하게 발견된다.

 

공든 탑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에서 큰 사랑이 나온다. 고생을 많이 하고, 상처가 많고, 그 과정을 인내해서 살아낸 사람들은 그래서 덕이 나온다. 덕은 사랑이 숙성된 상태다. 옳고 그름을 명정하게 분별하는 하는 것이 智라면, 그것을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慧다. 지만 있고 혜가 없으면, 헛 똑똑이라고 한다. 아는 것은 많은데 그 아는 것은 이미지에 갇혀, 현실에서 약발이 안 받는다.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분별이 많은데, 말을 꺼내는 순간 혼란과 갈등, 저항만 더할 뿐이다. 그럴바에 침묵이 오히려 금이다.

 

마음의 분별이 많은 사람들은 대게 마음의 판단과 당위가 강하기 마련이다. 그 판단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수용성이 커지며, 사랑이 덕으로 승화될 수 있는 흐름이 생기는데, 여간해서 그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그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공부거리가 된다. 똑똑하기 때문에 더 나은 것에 대한 민감성이 발달해서 더 빨리 공부로 나아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똑똑함이 공부가 되어지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지혜로운 스승은 공부를 하는 것에 능동이 아닌 수동형을 썼다는 것이 흥미롭다. 에고가 더 나아기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존재를 직감적으로 경험한 주체가 더 큰 나에 판단과 분별을 내맡기고 헌신하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디슨이 어렸을 때 학교를 안가고 마굿간인가 어디서 알을 품고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실 그런 미련함 때문에 그는 세상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지혜와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에디슨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에디슨 같은 자녀가 황당한 짓을 버렸을 때 그것을 허용하고, 지켜봐 줄 수 있었던 부모가 아닐까?

 

그 부모는 우리 내면에도 존재한다. 나의 생각과 감정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며, 이것 저것 진리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그것, 우리는 그 것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생명의 소명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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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창화

March 11, 2014
*.124.124.136

일여님, 감사합니다.

확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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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일여

March 12, 2014
*.242.56.63

^^;; 사부님 법문 파일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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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진법

April 26, 2014
*.111.2.142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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