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늙은 호박을 하나 샀다.
짙은 녹색과 점점이 박힌 노란색의 무늬 ,
갈색터치의 몇개의 굵은 주름으로 전체를 이룬
한아름 크기의 호박이었다.
거실 한켠에 있는 것 만으로
이상하게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다.
어찌보면 늙은 농부의 거칠고 투박한 손과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쉽게 대할 수가 없었다.
지날 때 마다 눈길이 멈추고
뿌듯한 안도감으로 위로를 받았다.
엄마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어쩌면 내 삶의 전부였음을
가을과 함께 새삼 깨닫는데
그럴 때 마다 거실 한켠에 늙은 호박이
나를 바라보는지
내가 늙은 호박을 바라 보는지
야릇한 심정이 되었다.
마음의 고통으로 시작된 삶의 여정은
방황과, 마음공부, 명상, 현재의 심리학 까지
그 출발의 시작은 사실은 엄마였음을
오롯이 인정하게 될 즈음
엄마를 알고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은
다름 아닌 오직 엄마만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그런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미움과 원망과 피해의식..
온갖 삶에 대한 저항이 오직 사랑이었음을
내가 사랑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그간의 삶에 대한 모든 부정이 빛으로 환호한다.
지독한 원망과 미움은
그만큼 소중하고 피할길 없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반증에 불과했다.
세상은 피할 수 있지만
사랑은,
세상의 어떤 밥법으로도
어느 곳으로도 피할 수 없음을.
왜냐면 사랑이 곧 나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푸하하~
바라만 보던 늙은 호박을 썰어서
한 바구니는 옥상 가득한 가을 햇빛에 널고
몇 조각을 압력솥에 푹 삶았다.
현미가루를 넣어 호박죽을 끓여서
생크림과 계피가루를 얹어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다,
늙은 호박의 사랑을~^^*~
삶의 여정은
알고보면 사랑을 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고2 어느 겨울에
입적하신 법정스님과 불일암에서 마주했다.
"혼자서 먹기에 배가 너무 커서 못먹었는데 너랑 먹어야겠구나"
머리만한 신고배를 스님께서 손수 깍으시는데
"스님! 꼭 엄마같아요." 하자
스님께서 머리에 쓰고 계신 모자를
얼른 벗어서 방바닥에 내려 놓으셨다.
몇차례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에게 끓임없이 엄마를 투영했고
그러고 나면 얼마 후 헤어졌다.
여상에게도 종종 엄마를 강요하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꼭 다투거나 관계가 불편했다.
엄마에 대한 투영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평생을 지배했다.
어느날 사부님을 마주하면서
서서히 해결이 된 듯 했는데
뭔지 알 수없는 갈증이 남아서 답답했다.
사부님을 향하는 마음조차
다름아닌 사랑에 대한 목마름 임을 알게되기 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끓임없이 구하는 그 마음을 내려 놓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자각하고 난 후
사부님을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럼 무얼 가지고 만날까..
슬그머니 고민이 올라오기도 했다.
애정결핍!!
결핍 때문에 구하는 것이 아니고
구하기 때문에 결핍이 되는 논리.
내가 사랑인데 그 사랑을 밖에서 구하니
당연히 결핍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오늘은 호박등에 불이 켜졌다.
평생의 화두인 엄마가 드뎌!!
관세음, 문수,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등극 하셨다.
모름지기 온전히 구할지니
구하는 그 마음에 이를때 까지....(*)....
예인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당~~